‘정동기’ 입장표명 없이
비토한 한나라당 탓만
비토한 한나라당 탓만
“잘못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한나라당에만 화를 내고 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한나라당의 자진사퇴 요구로 12일 물러난 뒤 청와대가 보이는 모습을 두고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다. 청와대가 부적절 인선으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과오에 대해서는 입을 닫은 채, 이에 제동을 건 한나라당 탓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동기 부적격’을 청와대에 일방 통보한 안상수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26일 만찬을 취소했고, 참모들은 “한나라당을 그냥 봐주고 넘어가선 안 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감사원의 독립성·중립성 훼손 논란과 변호사 시절 고액 급여에 대한 국민들의 소외감 등을 헤아리지 못한 ‘잘못’에 대해서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청와대가 이전의 인사 실패 때마다 공식 발언이나 문책 등으로 매듭을 짓고 넘어갔던 것과도 다르다.
이 대통령은 2008년 2월 정부 출범 때 3명의 장관 후보자가 무더기로 낙마한 직후 “출발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었다. 우리 자체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일부나마 과오를 인정했다.
2009년 7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스폰서 논란과 국회 거짓답변으로 자진사퇴한 직후, 이 대통령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라며 천 후보자 지명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또 당시 정동기 민정수석은 검증 실패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 대통령은 또 지난해 8·8 개각 뒤 김태호 총리 후보자 등 3명이 자진사퇴한 직후 장차관 워크숍에서 “총리·국무위원 임명 과정에서 공정사회에 맞지 않는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책임이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번 ‘정동기 사태’에 대해서는 어떤 공개발언도 하지 않고 있으며, 참모들도 유감이든 사과든 공식 입장 표명은 건너뛴 채 ‘심기일전’만 얘기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인사 실패가 핵심인데 청와대는 ‘한나라당에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며 “잘못된 인사에 대해 국민들 앞에 입장을 밝히는 게 청와대의 책임있는 자세”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의 이런 태도가 역설적으로 권력누수에 대한 위기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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