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13일 오후(현지시각) 아부다비 시내 무슈리프궁에서 칼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아부다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로열티·소득세 지급 뒤 소유하는 ‘조광권 확보 방식’
이 대통령 진두지휘…본계약 남아 실익규모 미지수
이 대통령 진두지휘…본계약 남아 실익규모 미지수
한-UAE, 석유가스 개발 양해각서 체결
한국이 세계 6위 매장량의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유전에 처음 진출하게 됐다.
한국석유공사와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는 13일(현지시각) 아부다비 무슈리프궁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아랍에미리트의 칼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 모하메드 아부다비 왕세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석유가스분야 개발 협력 양해각서(MOU)’와 ‘3개 유전 주요조건계약서(HOT)’에 서명했다.
‘석유가스분야 개발 협력 양해각서’는 미국(엑손모빌, 셰브런 등), 영국(비피), 프랑스(토탈) 등의 대기업들과 아부다비의 유전 조광권 계약이 끝나는 2014년부터 한국이 ‘최소 10억배럴 이상의 대형 생산 유전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내년 중 본계약을 체결해, 이르면 2014년 2월부터 30년간 원유를 생산할 예정이다. 한국은 원유를 퍼올려 국제시장에 팔거나 국내로 들여오되, 아부다비에 상당 부분의 로열티와 세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10억배럴 이상이라는 규모는 한국이 그동안 확보한 약 60건(총 18억배럴)의 유전 중에서 단일 유전으로는 최대 규모다.
‘3개 유전 주요조건계약서’는 가채 매장량 2억배럴 안팎으로 추정되는 미개발 광구 3곳에 한국이 최대 100%까지 지분을 확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본계약을 맺어 이르면 2013년부터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가지 합의 내용을 합치면 2013년부터 최소 12억배럴의 원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수급 불안을 덜게 됐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12억배럴은 현재 시가로 132조원어치(배럴당 110달러 기준)이며, 한국이 1년5개월 쓸 수 있는 분량이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제 한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의 극소수 석유 메이저 기업들만이 참여해 온 ‘꿈의 지역’에 진출하게 됐다”며 “1970년대 이후로 어느 나라도 진입하지 못했던 아부다비 유전의 문을 무려 30~40년 만에 다시 연 첫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유전 확보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의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이 (현재의 10%에서) 약 15%로 올라간다”며 “최소한 일본의 자주개발률 수준인 20%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이 대통령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에게 지시해 지난해 2월 태스크포스가 꾸려지면서 시작됐고, 곽 위원장이 최근까지 아부다비를 10여차례 오가고 이 대통령이 수차례 친서를 보내는 등 힘을 보태 성사됐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아부다비 왕세자 등과의 개인적 친분이 있던 이 대통령은 친서에서 “석유 비즈니스 측면에서만 생각하면 한국을 참여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단순한 유전 개발 사업자가 아니고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아부다비의 경제협력 파트너”라고 설득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문자 그대로 007 작전 비슷하게 특별팀을 만들어 움직였다”며 “미국, 영국 등 세계 메이저 회사들이 서명 직전에라도 알았더라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실제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는 구체적인 조건이 앞으로 확정돼야 알 수 있다. 지식경제부는 기존에 아부다비에 진출해 있는 미국 등 메이저 업체들과 비슷한 조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곽승준 위원장은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합의는 왕실과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본계약이 될 수밖에 없다”며 “상업적 계약이라서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무조건 이익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 거래에서 일방적 시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향후 아랍에미리트에 국방, 건설, 경제·통상, 보건·의료 등 다른 형태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지식경제부 김정관 에너지자원실장은 “아랍에미리트가 석유 의존 산업구조에서 벗어나는 데 우리가 도와줄 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부다비/황준범 기자, 이순혁 기자 jaybee@hani.co.kr
12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을 태우고 아랍에미리트로 가던 대통령 전용기(공군 1호기)가 기체 이상을 일으켜, 인천공항으로 회항하면서 서해상에 항공유를 쏟아버리고 있다. 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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