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상황 펼쳐졌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청와대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면서 국정 운영이 마비되는 사태에 직면한 탓이다.
7일 아침 유승민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비롯해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이 집단 사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일순 깊은 침묵에 빠졌다. 정무라인을 중심으로 유 최고위원이 사퇴할 가능성을 점치기는 했지만, 이처럼 전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정무수석실 관계자는 “유 최고위원이 예상보다 빨리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홍준표 당 대표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은 ‘비상한 상황’이 펼쳐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또다른 고민이다. 청와대가 조금이라도 개입할 경우 현 상황이 악화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홍 대표가 이번 사태를 잘 수습할지, 홍 대표가 사퇴하고 박근혜 전 대표가 ‘구원투수’로 등장할지 등 여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무엇 하나 청와대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직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여권 내부를 조율할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당의 고민과 충정을 이해한다. 지켜보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른 핵심 관계자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게 좋을지, 유불리를 계산하기조차 어렵다”며 “당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볼 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청와대는 홍준표 대표 체제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조직적 후퇴’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해 예산안을 무사히 처리한 뒤, 친박계와 쇄신파 등 당의 각 세력이 ‘재창당 수준의 쇄신’에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제껏 홍 대표 체제에 대해 큰 불만이 없었다. 이 대통령의 내곡동 땅 문제가 터졌을 때도 이 대통령이 홍 대표를 따로 만나 ‘전면 재검토’로 사태를 일단락 짓는 등 ‘이 대통령 - 홍 대표’ 라인이 살아있었다. ‘지도부 내홍 - 쇄신 실패 - 총선 참패’로 이어져 마지막 임기 1년 동안 식물정권으로 전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고 싶지만, 이는 모두 강 건너 여의도의 몫인 상황이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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