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맨 왼쪽)과 원혜영 민주통합당 대표(왼쪽 둘째) 등 여야 대표를 초청해 만난 자리에서 박 위원장에게 팔을 뻗은 채 발언을 권하고 있다. 맨 왼쪽은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청 ‘천안함, 김정일 책임’ 강조 왜
미·중 ‘김정은체제’ 인정에
한반도 정세서 소외될까 우려
남북관계 악화 방치 어렵고
내년 총선·대선 앞 부담도
임기말 실효 거둘지 미지수
미·중 ‘김정은체제’ 인정에
한반도 정세서 소외될까 우려
남북관계 악화 방치 어렵고
내년 총선·대선 앞 부담도
임기말 실효 거둘지 미지수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로 활용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사실상 조의를 표한 데 이어 천안함·연평도 문제의 책임을 이미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한테 돌림으로써, 김정은 체제에선 남북이 새롭게 시작하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2일 오후 기자들을 만나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해 “최종 책임은 김정일 위원장한테 있다”고 유난히 강조했다. 이 자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관계를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수 있다”고 한 오전 발언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일견 김 위원장을 비판하는 듯하지만, 김 위원장이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새로 들어설 북한 지도부는 이들 사태에 대한 직접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으로, 남쪽과 새로운 북쪽 지도부가 ‘과거 문제’를 적절히 매듭짓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사표시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천안함·연평도 문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남북관계 발전의 전제조건으로 삼아 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북한이 내부의 지도자 선출 시스템을 통해 리더십을 정했다면, 당국 간 상대로 ‘누구 손자라서 안 된다’고 할 순 없다”고 말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이지만, 북한 체제가 선출한 지도자를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 깔려 있다.
이 대통령의 ‘대북관계 유연 발언’은 정책 변화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대북 기조 변화 조짐에 대해 “김정은 체제를 맞아 다시 시작하기, 리셋(reset)이 가능하다”며 “내년 2일로 예정된 대통령 신년연설에도 이런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남북관계의 악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정무적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꽉 막힌 남북관계를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남북관계 단절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큰 부담이다. 정부의 대북 조의 표명에 보수 진영마저 동의하면서 정책 전환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됐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등이 북한의 ‘김정은 체제’를 서둘러 인정하며 적극적인 ‘조문외교’를 펼치는 상황에서 자칫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남북관계는 북한의 돌출행동이 항상 문제였다. 김대중 정부 때 서해 교전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돌발상황을 관리하면서 보수 진영의 냉전적 시각을 극복해야 하는데, 지지기반 등을 따져볼 때 현 정부한테는 쉽지 않은 과제다. 여기에 집권 기간도 1년밖에 남지 않아 운신의 폭도 좁다. 북한은 당분간 유훈통치를 통해 김 위원장의 노선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결정된 것이 전혀 없고,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관망하고 있다. 북한이 변화를 보인다면 그에 맞춰 우리도 대응하겠다는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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