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혼선’ 들어 최종안 확정 때까지 공개 않기로
지나친 비밀주의, 정책 사전검증 기회 차단 우려
지나친 비밀주의, 정책 사전검증 기회 차단 우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11일 시작된 각 부처 업무보고 내용까지 공개하지 않기로 하면서, 박근혜 당선인의 ‘비밀주의’와 ‘정보 통제’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박 당선인이 집중적으로 비판받았던 ‘권위주의와 불통’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부처별 업무보고 내용에 대해서는 (언론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수위가 업무보고에 대해 언급하면 국민들께 정책적 혼선과 혼란을 드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정책에 대한 신뢰가 훼손돼 정부의 정책 실행력에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업무보고 절차는 부처 업무보고 → 해당 분과위원회 검토 → 국정기획조정분과위에 제출 → 국정기획조정분과위 종합 → 박근혜 당선인에게 보고 등 모두 5단계로 진행된다. 이 5단계를 거쳐 ‘국정 운영 로드맵’이 확정되기 전에는 내용을 밝히지 않겠다는 게 윤 대변인의 설명이다.
과거 인수위가 정부 부처 업무보고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린 뒤 이에 대한 인수위의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국정 운영의 틀을 잡아나간 데 반해, 이번 인수위는 최종안 확정 때까지는 내부 논의 내용을 철저히 비밀로 하겠다는 것이다. 1997년과 2002년, 2007년 인수위 때 각 분과 간사들이 업무보고 내용을 언론에 설명하고, 인수위와 언론 등이 이에 대한 평가를 주고받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윤 대변인은 “(비공개 방침이) 인수위원들의 일치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뜻과 다른 ‘혼선’을 극도로 싫어하는 박 당선인의 의지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국방부의 첫 업무보고 때부터 “당선인의 당부 말씀인데, 확정되지 않은 안이 공표되면 혼선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특별히 유의해주시길 바란다”고 경고한 부분에서도 이런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국민의 이목이 쏠린 인수 업무를 비공개로 일관하는 것은 토론이나 소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를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1970~80년대 권위주의 시대의 통치방식과 유사하다. 과거 인수위 때처럼 향후 변경 가능성을 전제로 내용을 소개하면 될 일인데도, ‘내용 공개=혼선’이라고 간주한 것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국민들은 당선인의 공약이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돼 가는지 알고 싶어한다. 공약 이행 가능성과 로드맵, 재원 조달 계획 등에 대한 공개와 비판, 평가 자체가 국민과의 소통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도 “인수위가 ‘내가 알아서 결정할 테니 결과만 들어라’는 건 오만한 자세다. 외부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혼선’으로 보는 발상은 ‘과정은 불필요하다’고 보는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런 ‘비밀주의’는 인수위가 지금껏 강조해왔던 ‘낮은 자세 및 공감’이라는 슬로건과도 모순된다. 그런데도 윤창중 대변인은 업무보고 비공개 방침을 밝히면서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한다는 대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고 강조해, 업무보고 내용을 취재하려던 기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윤 대변인은 ‘(내용을 공개해) 국민 여론이나 반응을 보는 것도 소통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건 소통과 별개의 문제”라고 답하기도 했다.
지나친 ‘비밀주의’ 때문에 정책에 대한 사전 검증 기능이 약화되고, 각 부처에서도 외부의 평가보다는 박 당선인이 선호할 보고에만 치중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업무보고를 준비중인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는 ‘점령군’이 들이닥쳐 준비하느라 집에도 못 갔는데, 지금은 긴장감이 떨어져 사무관들도 집에 일찍 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런 탓에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인수위의 ‘밀실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지금까지 박 당선인은 무슨 일이 확정된 뒤 비판하면 ‘확정되기 전에 의견을 내야지, 왜 이제 와서 흔드느냐’고 했다. 그런데 이제 확정되기 전에도 의견을 못 내게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무원이나 부처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된 업무보고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국민이나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바로잡아야 하는데, 자기들이 내부에서 다 잡아낼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석진환 조혜정 이재명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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