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발생한 ‘윤창중 성추문’과 관련해 13일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의 “국민과 대통령께 사과”(10일),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12일)는 사과에 이어 세번째다. 청와대가 이번 사건의 파장과 국민적 실망을 제때 헤아리지 못한 탓에 사과의 수위와 강도를 매번 높여야 했고, 결국 대통령 자신이 나서는 상황이 됐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방미 일정 말미에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이번 일로 동포 여학생과 부모님이 받았을 충격과 동포 여러분의 마음에 큰 상처를 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이 문제는 국민과 나라에 중대한 과오를 범한 일로, 어떠한 사유와 진술에 관계없이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사실관계가 밝혀지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송구스럽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표현을 쓴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조각 과정에서 ‘불통 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을 때도, 주요 공직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를 할 때도 박 대통령이 직접 사과란 말을 입에 올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은 사과와 함께 공직기강 확립에 나설 뜻을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서실 등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으며,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관련 수석들도 모두 책임져야 한다. 청와대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들이 자신의 처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자세를 다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진노했다.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표현했다. 한번 쓴 사람은 잘 바꾸지 않는 게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지만, 이번엔 이남기 홍보수석의 사의를 반려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허태열 비서실장도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에서 “앞으로 청와대 직원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한 무관용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청와대 차원에서 다잡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후 약처방’이 국민들의 실망감과 허탈감을 얼마나 달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박 대통령의 발언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된 자신의 ‘독단적인 인사 스타일’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들어있지 않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부정적인 여론을 무릅쓰고 윤 대변인의 임명을 강행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하는데도, 박 대통령은 자신의 ‘불통 인사’에 대해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사과의 타이밍과 형식이 실망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사건 발생 사실이 알려진 뒤 나흘 만에야 나왔다. 이남기 홍보수석(10일), 허태열 비서실장(12일)의 사과로도 여론 악화를 막기 힘들다는 판단이 서자 뒤늦게 사과에 나선 셈이다. 그사이 윤 전 대변인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청와대가 그에게 치명적인 조사 내용을 흘리면서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직후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가 지연되자 대국민 담화를 자청해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반면 이번엔 국민 앞에 직접 나서는 대신 회의 석상에서 유감의 뜻을 밝히는 소극적인 형식을 취했다. 여론의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윤창중 성추행’과 박근혜 독선 인사 [한겨레캐스트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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