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과 초동대처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며 더욱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 구성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또 “안전행정부 장관이 과거 대형 사고를 철저히 분석해 대책반 구성과 현장 구조, 사고 수습 등을 포함한 유형별 대책을 다시 만들라”고 주문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각 부처의 혼선을 지적하며 “자리 보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을 우리 정부에서 반드시 퇴출시키겠다”는 경고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이 참사 발생 닷새 만에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 부실과 재난대응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혼란 상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청와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임을 떠넘기며 우왕좌왕했던 각 부처의 대응을 접하고도 청와대가 혼선을 신속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사고 발생 직후 곧바로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부대를 투입하라”고 지시하고, 오후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찾아 “구조 인원에 왜 차이가 나느냐?”고 질책했다. 다음날 실종자 가족을 만나 “지시사항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사람들 다 물러나야 한다”며 사고 수습 전면에 나서는 듯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사고 수습 행보 외에 정부 부처 업무를 감독하고 조율하는 기관으로서 사고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어떤 조처를 지시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된 질문에 답변을 피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이 최초 보고를 받은 시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는 자칫 이번 사건이 ‘청와대 책임론’ 또는 ‘청와대 역할 부재론’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1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앞서 김기춘 비서실장(오른쪽부터)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lee312@hani.co.kr
정부의 재난관리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중대본(본부장 안전행정부 장관)은 박 대통령이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하던 시각, 해양경찰청과 업무 협조가 안 돼 구조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부처간 혼선은 박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해 실종자 가족을 만났을 때까지도 계속됐다. 안행부 중심의 중대본이 다른 조직(군,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과 협업에 문제가 있다는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그때에야 청와대는 다시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별도의 대책본부 구성을 논의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설계한 안전행정부 중심의 ‘재난대응 컨트롤타워’의 실패를 시인한 셈이다. 이에 따라 사고 다음날인 17일 총리실은 정부 차원의 구조·수색활동 발표 주체를 ‘범부처 사고대책본부’로 일원화하겠다고 밝혔지만, 다시 18일엔 “기구를 안 만들어도 총리가 지휘할 수 있다”며 다시 이를 취소하는 등 혼선을 되풀이했다.
부처별 혼선 과정에서 청와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처한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다. 위기관리센터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정보를 가장 빨리 받아 이를 대통령과 각 수석실로 전파하는 곳일 뿐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실제 현재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재난 관련 인력은 안행부에서 파견 나온 행정관 1명뿐이다. 결국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명칭만 ‘위기관리센터’일 뿐, 국방·안보 관련 사항 외에 재난과 관련해 신속한 지시를 내릴 전문인력도 없다. 그래서 재난상황에서는 별다른 역할도 없는 대통령 1인을 위한 ‘보고센터’ 성격이 더 짙다.
이는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산하에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설치해 청와대가 직접 대형 재난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관리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가 폐지되면서 위기관리센터도 행정관급 위기정보상황팀으로 축소됐고, 통일·외교·군사 등 안보분야 기능만 청와대에 남겨뒀다. 이후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외교안보 분야 대응을 위주로 하고, 비군사적 위기는 안행부가 맡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안행부가 재난 시 컨트롤타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다는 것은 이번 사건으로 명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참여정부 때 위기관리업무를 책임졌던 한 인사는 “초동 단계에서 부처간 책임과 역할을 주고 이게 제대로 되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는데, 안행부로는 안 된다. 그래서 청와대 권위가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전 정부에서 고위직을 맡았던 또다른 인사는 “청와대가 모든 일에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해야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혼선을 빚고 있을 때는 청와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되는데, 이번 일의 경우 사실상 뒤로 물러나 질책만 하는 것은 청와대가 일처리에 자신이 없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 행태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석진환 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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