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 내용에서도 행정부 수반이라기보다 국가원수로서의 인식만
“온몸에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다.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눈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①)
“가슴에 송곳이 박힌 것처럼 아파서 잠들 수가 없었다. 악몽에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 밥알이 모래알처럼 느껴져서 넘길 수가 없었다.”(②)
수만 볼트의 통증이 세월호 참사 가족들의 심장에도 똑같이 꽂혔을 것이다. 이 글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서전(<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 1974년 모친(①), 79년 부친(②)을 잃은 심경을 적은 것이다. 어찌 보면 그는 실종자 가족·유족의 애통함에 누구보다 한두 발짝 더 다가갈 수도 있었다.
무슨 사과를 예고하면서 하느냐
유족들은 분향소로 들어온 ‘대통령의 조화’마저 바깥으로 치웠다. 시민들은 분향소에서 한 할머니의 손을 잡은 대통령의 위로가 ‘사진화보용 연출’이라 의심했다. 대통령은 4월29일 국무회의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죄송하고 마음이 무겁다”고 비공개 사과를 했다. ‘안락의자 사과’는 ‘상대에게 직접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사과의 오랜 개념을 어지럽혔다.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죽인 정부”라는 ‘대통령 책임론’도 진정시키지 못했다. “(시민과 유족들이) 가식적인 사과로 여기고 있다. 오히려 이런 사과는 분노를 일으키는 폭력으로 봐야 한다.” 심리학자 김태형씨의 말이다. 대통령의 언어와 태도가 수습과 결집의 힘이 되기보다, 통증을 불러오는 칼과 송곳이 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황금시간)을 놓치더니, 사과의 골든타임도 놓쳤다는 비판이 많다. 아이들을 건져올리지 못한 책임이 있는 국무위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사과라고 내놓은 발언은 참사 14일 만에 나왔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대통령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 증가하는 데 있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주간의 얘기다.
“대통령의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려면 첫째 솔직하고, 둘째 진실해야 하며, 셋째 반성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놓쳐서는 안 될 하나는 자신을 그 사안의 당사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빠지면 안 된다. 박 대통령의 일련의 발표를 보면 자기는 없고,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얘기할지 잘 다듬은 말과 ‘대통령 박근혜’만 보인다. 이건 과거 권위적인 대통령들의 방식이다. 대국민사과를 (사고 수습 이후) 다시 할 거라는 얘기도 나오더라. 무슨 사과를 예고하면서 하는가. 대통령이 자기 책임으로 통감했다면 지금 느끼는 마음 그대로, 즉각적으로 했어야 했다. 표현이 거칠면 좀 어떤가?”
박 대통령이 4월29일 분향소에서 유족들의 울분과 마주했을 때조차 “이거(조문) 끝나고 국무회의가 있는데 거기에서…”라며 피해선 안 됐다는 것이다. ‘제 책임입니다’라고 대통령을 ‘1인칭 화법의 주어’에 갖다놓고,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십니까’라고 유족의 고통을 현장에서 위로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지금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고 했다.
‘현재의 책임=대통령’ 고리를 끊으려
대통령이 ‘나’와 ‘나의 책무’를 분리하고, 위에서 관조하는 현상이 짙어진다는 우려도 높아진다. 그는 4월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월호 선장과 공무원을 질책하며 자신을 심판자·해결자 위치에 올려놓는다. 4월29일 국무회의에선 “잘못된 적폐,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지 못해 “한스럽다”고 했다. ‘생존자 구조·사고 수습에 대한 현재의 책임=대통령’이라는 등식의 고리를 끊으려 한다.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인데, 국가원수로서만 인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하지현 교수)는 것이다.
한국심리운동연구소장인 김윤태 우석대 교수는 “본인과 일반 사회현상을 분리하며 (사회현상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은, 왕과 봉건주의 시대 영주들한테서도 나타나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유신시대에 아버지(박정희)의 통치를 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자신이 퍼스트레이디로서 유신시대 정점에 있었다. 당시 자신이 교육받은 것에 대한 신뢰가 높은 편이다. ‘나는 옳다. 내가 결정한 것은 맞다. 내가 문제를 미리 알았다면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라를 나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자기 확신이 강하다. 그래서 합리적인 문제제기마저 대드는 것처럼 여기면서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면 나쁜 것으로, 찬성하면 선한 것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선악구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충성파인 측근그룹과 장관 등 공신그룹을 구별해 다루고 있다고도 보았다.
“측근그룹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사람(대통령)에게 충성하고, 대통령은 그들을 통해 ‘내가 맞다. 내 권한은 누릴 만하다’고 느낀다. 대통령과 측근그룹이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공신그룹은 다른 그룹이다. 이들은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통해 자신의 권력이 유지되는 사이다. 그래서 대통령도 이들에게는 날카롭게 비판하고, 필요하면 사퇴도 시킨다. 조선시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측근의 충성을 통해선 자신의 권한과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대통령 권력과 공생관계인 고위 공직자들을 질책하는 것으로 ‘문제적 관료’들과 자신을 분리해 대통령의 제왕적 위치를 다지려 한다는 얘기다.
나르시시즘의 특성도 엿보여
심리학자 김태형씨는 박 대통령이 강한 듯 보이지만, ‘공개적 사과 기피증’이 오히려 유약한 심성 탓이라고 보는 쪽이었다.
“마음의 힘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대인 접촉을 꺼리고, 공개토론도 잘 안 하려 하지 않나. 소통할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대개 마음의 힘이 약하다.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자기가 붕괴될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그는 박 대통령이 개인적으로는 부모의 죽음이란 비극을 겪은 이후, 세상을 향한 방어 심리가 강해진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뒤, 자신을 향한 비판도 잘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지면, 비판에 대해 과잉 대응을 하게 된다.”
그는 박 대통령이 ‘자기애(愛)·자기과시’에 빠진 나르시시스트라고 볼 수 없지만, 최근 국정운영에서 나르시시즘의 특성이 일부 엿보인다는 우려를 표했다. 보통 나르시시즘을 가진 이들은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적대적인 공격으로 간주하거나, 자기중심성과 합리적 판단의 왜곡,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세상은 과소평가하는 특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4월29일 국무회의에서 ‘나의 책임’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고, ‘국가 개조’를 주문한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지도자의 변화는 거부한 채, 사회 시스템·국민의 정신구조까지 일괄적으로 바꾸겠다는 위압적 태도로 읽힐 수 있어서다.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가 개조는 일본 우익과 국가주의자들이 쓰는 용어”라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강원국 주간은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해) 강한 용어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강한 용어는 (어떤 말을 인위적으로 사용하는) 조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고 했다.
“예를 들어,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아들 현철씨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식의 잘못은 애비의 허물’이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에게 돈이 흘러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자, ‘입이 열 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의 불신에 대해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강한 용어는 조어가 아니라 마음의 울림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성찰이 함께 진행돼야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가 개조’ 용어의 사용이 잘못됐다기보다는, 정부를 향한 불신부터 대통령이 걷어내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틀을 점검하자는 차원에서 국가 개조라는 말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이 나오게 된 구조적 원인과 책임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가 개조라는 화두만 던지면,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하게 끝날 수 있다. 국민 개조를 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대통령부터 오늘의 현실에 대해 책임지고, 반성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또 양적인 성장을 중시하고, 사람의 안전과 인간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 대한 대성찰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
이 때문에 국가 개조가 아니라, 대통령의 인식 대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하지현 교수는 대통령이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소통은 ‘저 사람들은 내가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꿇어도 반대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경우에 따라 내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저런 식으로 나를 받아들일 수 있구나’라고 인정하는 데서 소통은 시작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니까’가 아니라 그가 말하는 의도와 거품을 걷어내고, 상대가 얘기하는 ‘콘텐츠의 팩트(사실)’를 읽어야 한다.”
상대의 격앙된 감정을 차분히 걷어내면, 분노한 ‘사실’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원국 주간은 “우리 사회가 더 높은 수위의 국민참여와 국민소통을 원하는 쪽으로 물꼬가 터졌는데, 박 대통령은 반대로 대통령의 권위는 내려놓지 않으면서 왕 같은 제왕적 사고를 하려 한다. 국민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기 어렵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내가 왜 불통이냐면서. 그런데 국민은 이 둘의 미묘한 차이를 잘 알고 있다.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과 상의하면서 국정을 이끌어가려고 하느냐,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고 국민을 끌고 가려 하느냐.”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박 대통령은 “누가 내 등에 비수를 꽂아도 그만큼 아프지 않을 것이다”던 부모의 죽음 이후 청와대를 나와 불경·성경, <정관정요> <명심보감> 등을 읽으며 마음의 멍울을 가라앉혔다고 떠올린 적이 있다.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써 자신을 책망한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라는 <명심보감> 구절도 적고 다니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1998년 4·2 재보궐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서 했던 첫 발언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국민과 아픔을 함께하는 정치가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시민들이 박 대통령에게 주문하는 것도 그런 것들이다. <명심보감> 구절과, 국회의원으로서 첫 발언한 그때의 다짐 같은 것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29일 국무회의에서 의자에 앉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유족들은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박 대통령은 5월2일엔 사고 수습 이후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상에선 ‘사과 예고제’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29일 세월호 참사 분향소에서 조문을 온 할머니와 만나고 있다. 시민들은 청와대가 일반 조문객 할머니를 유족으로 가장해 사진 촬영을 연출했다고 의심했다. 이런 의심은 정부를 향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필요한 매뉴얼은 ‘헌법’
수첩에 적고 다니며 새기십시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들이 ‘대통령의 자격’을 묻고 있다. 눈앞에서 아우성치는 수백 명의 생명을 구하는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고도 말한다. ‘사람들을 죽인 정권’이란 격앙된 외침까지 터져나온다.
막대한 권한을 몰아준 대통령은 권한의 크기만큼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임기 5년간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임무를 친절하게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선서할 문구까지 제시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통령이 수첩에 적고 다녀서라도 잊으면 안 될 책무의 첫 번째로, 헌법 준수를 들고 있다. ‘준수’는 ‘(헌법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라’는 뜻이다.
그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적고 있다.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면, 이는 ‘불가침’으로 존중받아야 할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그래서 헌법은 제34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재차 강조한 뒤, 6항에서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국가에 부가한다.
헌법은 배에 갇힌 학생들이 허망하게 가라앉지 않도록, ‘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국가가 꺾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명령한다. 제30조는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혹여 실종자 가족·유족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의자에 앉아 컵라면이나 먹지 않도록,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제7조)는 복무자세를 강조한다. 여기서 국민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1조 2항)고 헌법이 정의한 ‘국가와 주권의 주인’을 일컫는다.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임동욱 부소장(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은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자격은 헌법수호다. 자유민주주의·주권재민(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을 지켜내는 것이고, 여기에는 국민의 안전이 중요하게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개인적인 자질·능력 5가지에 도덕성·민주성·정책능력·인사관리·위기관리가 들어간다. 현대사회가 위험사회가 되면서, 리더십의 차별성은 위기관리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위기관리에 실패하면 정부 신뢰에 위기가 오고, 그건 대통령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2월25일 취임식에서 헌법 제69조가 주문한 대로 선서를 했다. 재난에 대처하는 ‘유형별 매뉴얼을 다시 만들라’고 질책한 박 대통령에게 정작 필요한 행동지침(매뉴얼)은 ‘헌법’에 이미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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