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청와대가 30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내용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이처럼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함에 따라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을 둘러싸고 전·현직 대통령 간의 갈등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지난 2009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정운찬 전 총리의 대망론을 견제하기 위해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했다는 취지로 쓴 내용'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당시)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한 게 정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이 전 대통령이) 이야기한 것은 사실에 근거했다기보다 오해해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고위 관계자는 또 “세종시가 2007년 대선 공약이었고,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 세종시와 관련한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했다”며 “박 대통령이 충청도민들에게 수십군데 지원 유세를 하면서 약속한 그런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종시 문제는 2005년 여야가 국토 균형 발전으로 협상 끝에 합의한 사안이고, 그 이후 지방선거, 총선거, 2007년 대선 때 당의 공약으로도 내걸었던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 이후 세종시 이전을 공약대로 이행하겠다고 여러차례 확인했다”며 “정 전 총리의 세종시 수정안 얘기가 나왔을 때 당시 박 대통령은 정치적 어려움 속에서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관점을 갖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그런 문제가 정치공학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되는 것이 과연 우리나라나 국민이나 당의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며 “잘 아시다시피 박 대통령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개인의 소신이나 신뢰를 버리는 정치 스타일이 아닌 것을 여러분이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또 회고록에 나오는 ‘남북 문제’와 관련해서도 “남북 문제를 얘기하면서 전제조건으로 돈 거래 얘기가 나오는 것은 놀라운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지금 외교 문제가 민감한데, 세세하게 나오는 것이 외교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정혁준 석진환 기자
june@hani.co.kr
다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9장 ‘5년 대통령이 100년을 보다’ 가운데 ‘안타까운 세종시’에 나오는 일부분이다. 청와대가 지적한 것은 이 내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정운찬 전 총장이 총리로 취임한 후 여당과 교감을 갖고 세종시 수정안을 만들어 발표하는 것이 순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2009년 9월 3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 전 총장은 서울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다가 세종시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여과 없이 밝혀버렸다.
그러자 언론은 일제히 ‘정운찬, 세종시 수정안 추진’이라 보도했다. 기자들이 묻자 총리 후보자가 솔직하고 담담하게 견해를 밝힌 것이지만,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일이 커져버린 것이다. 충청권을 설득할 수 있는 대안도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세종시 수정안이 정국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여당 일각에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한나라당 비주류’의 반응은 싸늘했다. 2007년 대선 초기 정운찬 전 총장이 대선 후보에 버금가는 행보를 한 전력이 결정타였다. 전혀 근거 없는 추론이었지만,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2012년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
돌이켜보면 당시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끝까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치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시간> 631~632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