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왼쪽부터)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가 1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중동 4개국 순방을 떠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환송하고 있다. 성남/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 뒤 국정 운영은?
‘박-김기춘’ 단극체제서 변화 전망
이병기·김무성·유승민 “대화” 약속
박 대통령, 인선 고민 흔적
당과 조율은 없어 또 ‘소통 부재’
‘박-김기춘’ 단극체제서 변화 전망
이병기·김무성·유승민 “대화” 약속
박 대통령, 인선 고민 흔적
당과 조율은 없어 또 ‘소통 부재’
박근혜 대통령의 이병기(68) 청와대 비서실장 기용과 그 결정 과정은 향후 박 대통령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엿보게 해준다. 박 대통령이 “불어터진 인사”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장고 끝에 이병기 실장을 기용한 것은 여론의 요구에 답해 당·정·청 소통을 강화할 수 있는 외형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지만, 정작 박 대통령 본인의 변화를 통한 당·정·청의 유기적 소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많다.
박 대통령은 지난 27일 신임 비서실장을 최종 낙점하기 전까지 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현명관 마사회장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고 여권 관계자들이 1일 전했다. “이미 발표 열흘 전쯤 이병기 전 원장에게 비서실장 차출 가능성이 전달됐다”는 얘기와, “발표 전날만 해도 현명관 회장이 유력했다”는 전언이 교차한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병기, 현명관 두 사람 모두 박 대통령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상대여서 유력하게 검토됐으나, 막판에 현 회장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반영해 이 전 원장을 최종 낙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에서는 “정보기관 수장을 비서실장으로 데려간 것은 부적절하다”면서도 “좁은 인재풀에서 박 대통령이 그나마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비서실장 인선에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대통령이 나름 고민을 많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정권의 내부 사정이 드러난 상태라, 대통령이 행동 하나하나에 여론을 많이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앞으로도 여론에 좀 더 귀 기울이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엄하고 폐쇄적인 방식의 김기춘 전 실장에 비해 유연하고 개방적인 스타일의 이병기 실장 체제에서는 ‘소통’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 실장은 박근혜 당대표 시절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와 함께 일한 바 있고, 야당과 언론계와도 발이 넓다. 국정원장 시절에도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빠짐없이 만나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 언론 쪽과도 활발하게 만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당 지도부와 전화 통화도 거의 하지 않던 김기춘 전 실장 때와 견줘 소통이 훨씬 매끄러워지고,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도 이 실장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개방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실장은 지난 주말 유승민 원내대표 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1일 중동 4개 나라 순방을 떠나는 박 대통령의 환송행사에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참석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출국한 뒤, 이 실장은 환송행사에 참석한 김 대표, 유 원내대표와 20여분간 짧은 티타임을 가지기도 했다. 당-청 관계 중심축인 세 사람이 처음으로 상견례를 한 것이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 자주 대화하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내각 또한 ‘소통 총리’를 자임한 이완구 국무총리가 이끌고 있어, 새누리당에서는 당·정·청 소통 강화에 대한 기대가 높다. 기존의 ‘박근혜-김기춘’ 단극체제가, ‘박근혜-이병기-이완구-김무성·유승민’의 다극체제로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이와 관련해 “소통 측면에서 전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본다”면서도 “이병기 실장 등이 ‘어떤 내용’, ‘어떤 역할’로 소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개편으로 박 대통령 본인의 변화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이번 인선 과정에 새누리당 지도부와 사전 조율이 없었고 발표 한두시간 전에야 통보해, ‘소통 부재’를 재확인시켰다.
한편 비서실장 후보군에 현명관 마사회장과 한덕수 전 무역협회 회장,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등 경제전문가들이 다수 들었던 점은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3·1절 기념사에서도 “3년의 경제혁신으로 반드시 30년의 성장을 이루겠다”며 ‘경제 재도약’을 첫머리에 강조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경제팀에 더 많은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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