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8일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최근 고 성완종씨에 대한 두 차례 사면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제도적으로 고쳐져야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성완종 리스트’ 측근들 의혹 사과 없이
• “사면 진실 밝혀져야” 사실상 수사 지침
• “정치권 부패 척결” 자기 반성은 또 빠져
• 재보선 앞 정치공세…선거중립 위반 논란
• “사면 진실 밝혀져야” 사실상 수사 지침
• “정치권 부패 척결” 자기 반성은 또 빠져
• 재보선 앞 정치공세…선거중립 위반 논란
박근혜 대통령이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8일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최근 고 성완종씨에 대한 두 차례 사면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제도적으로 고쳐져야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노무현 정부 말기에 이뤄진 특별사면 과정을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이어서 야권이 반발하는 등 정국이 격한 대치 국면에 접어들었다. 박 대통령은 또 “금품 의혹 등이 과거부터 어떻게 만연해 오고 있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정치권 전반에 대한 사정드라이브를 통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처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전한 대국민 메시지에서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 늦출 수 없는 사안이라 안타깝지만 국무총리의 사의를 수용했다. 이번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이 이번 기회에 반드시 국민들의 의혹 사항을 밝혀내기를 바란다”며 “특검은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지켜본 후에 국민적 의혹이 남는다면 여야가 합의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 전반 수사’라는 기존 태도를 유지한 채 ‘사면 수사’라는 지침을 하나 더 내놓은 것이다.
반면 박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에 핵심 측근들이 연루된 것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완구 총리의 사퇴 건에 대해서도 “안타깝지만, 국정공백 최소화를 위해서” 받아들인 것으로 선을 그었다. 메시지를 대신 전한 김성우 홍보수석도 여야의 (대통령) 사과 촉구에 대해 “구체적 대상, 즉 어떤 것에 대한 사과를 할 거냐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현재 수사 중이니 과정을 지켜보면서 적절한 입장을 밝힐 때가 있지 않을까 싶다”며, 당장은 사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의 의중이 ‘진솔한 이해’를 구하는 게 아니라 ‘확전을 통한 물타기’에 있다는 것은 이번 메시지의 핵심이 ‘지난 정부와 야당 대표를 겨냥한 노골적인 수사 지침’이라는 점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박 대통령은 “고 성완종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오늘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되었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전 회장의 사면 과정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 그리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사이에 책임론 공방이 이뤄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들을 겨냥한 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의 이런 시각에는 ‘잘못된 사면이 성완종 전 회장이 로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억지 논리마저 담겨 있다. 이런 논리적 비약을 근거로 대놓고 ‘물타기 수사’ 지침을 내린 것이다. 검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대통령 스스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공개적으로 고발한 ‘2012년 대선자금’이나 ‘2006년 독일 출장 여비’ 등 자신과 관련이 있는 내용은 제쳐놓고, 지난 정권의 사면만 콕 찍어 거론한 것도 비상식적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자신의 측근들에게 향할 칼날을 지난 두 정부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향해 돌리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는 자신의 측근들이 대거 연루된 이번 파문을 돌파하기 위해 야당과 ‘강 대 강’ 대결을 벌이겠다는 것이자, 3년차 국정을 사정드라이브를 통해 끌고 가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런 이유로 박 대통령이 메시지 말미에 “공무원연금개혁안과 민생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한 것도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여야 간 장기 대치 국면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또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지금껏 두 차례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를 ‘과거 정치권 전반의 문제’로 싸잡아 비판했다. 사태의 핵심을 비켜가는 전형적인 ‘유체이탈식 화법’이자 ‘물타기식 해법’이다.
“이번에 반드시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 척결을 해서 새로운 정치 개혁을 이뤄 나갈 것”이라거나 “그동안 만연돼 왔던 지연, 학연, 인맥 등의 우리 정치문화 풍토”, “금품 의혹 등이 과거부터 어떻게 만연해 오고 있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서” 등을 언급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의 어두운 과거’를 정조준하고 있지만, 정작 그 과거 정치의 한복판에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쏙 빼놓았다. ‘성완종 리스트’를 통해 제기된 의혹이 자신의 대선자금이나 해외 출장 등과 관련된 것인데도 자신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제3자 또는 정치권 전체의 잘못인 것처럼 낙인을 찍어놓고, 자신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혁의 주체’로 나서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정쟁과 부패로 얼룩진 정치사를 바로잡겠다”는 각오를 밝혔지만, 정작 자신이나 내부를 향한 성찰은 보여주지 못했다.
건강 상태가 나빠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던 박 대통령이 재보궐선거 하루 전날 참모가 대독까지 해가며 강경한 메시지를 낸 것을 두고도 ‘선거를 의식한 타이밍’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주문한 ‘사면 관련 의혹 수사’도 실제 수사에서는 입증하기 매우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에서, 실제로는 선거를 염두에 둔 대외적 메시지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도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 야당이나 외부에서 요구하는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엄정한 특검이 이뤄지기 위해 대통령이 내려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또한 야당이 요구해온 비서실장 사퇴나 민정수석과 법무장관 수사 관여 금지 등은 철저히 무시됐고, 하다못해 ‘나 자신도 필요하면 수사하라’는 식의 의례적 표현이나 ‘특검 추천권을 포기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도 없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앞줄 가운데)이 28일 오전 춘추관에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들으며 걸어가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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