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대통령 기대 못 미쳐
국민연금 등으로 논의 변질”
박대통령 뜻 전달한 ‘사퇴의 변’
여당, 협상에 도움될지 의문 표시
공무원연금 협상 더 꼬일 듯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공무원연금법 우선 처리’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청와대가 대국회 업무를 총괄해온 조윤선 정무수석의 사퇴 카드까지 던지며 국회를 압박하고 나섰다. 공무원연금법 처리를 위해 여야가 물밑 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또다시 강수를 둔 것이어서, 여야 협상이 더 깊은 교착상태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18일 조윤선 정무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하고,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공무원연금법 처리 지연과 당청간 원활하지 못했던 의사소통 등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나는 형식이지만, 여권 내부에선 박 대통령이 국회와 새누리당에 직접적인 불만을 표출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특히 조 수석은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밝힌 사퇴 이유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애초 추구했던 대통령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논의마저 변질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하나의 축으로 참여한 청와대 수석으로서 이를 미리 막지 못한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조 수석은 이어 “개혁을 수용하는 대가로 이와는 전혀 무관한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심지어 증세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애초 개혁의 취지를 심각하게 몰각한 것”이라며 정치권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날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새로운 협상안으로 내놓은 ‘기초연금 확대 방안’까지 싸잡아 공격한 것으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와 연계한 그 어떤 조건도 ‘대가’로 규정하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조 수석의 이날 발언이 평소 어법이나 태도와는 많이 다르고 오히려 박 대통령 특유의 공격적 어투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대통령이 조 수석의 ‘사퇴의 변’이라는 형식을 빌려 법안 통과를 압박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조 수석이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어 사퇴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한 인사는 “조 수석은 언제든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이번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모양새가 본인이나 청와대로서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 지도부는 조 수석의 사퇴와 이에 따른 청와대의 메시지에 떨떠름한 반응을 내놨다. 조 수석의 사퇴가 협상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5·18 기념식 참석 뒤 광주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데 정무수석이 그걸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느냐. 그것(공무원연금법 처리 무산)은 조 수석 책임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정무수석이 책임질 일이 아니어서, 좀 의아하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조 수석의 사퇴와 관련해 “사회적 대타협을 파기한 데 따른 책임 회피용 꼬리 자르기”라고 평가했다. 새정치연합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청와대는 더이상 (여권의 협상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훼손하지 말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여야 합의가 중심을 잡고 진행될 수 있을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