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청주시 흥덕구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송재훈 서울삼성병원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더(The) 친절한 기자들]
사과할 줄 알았더니 사과 받거나 역공에 나서
대통령이 인사 잘못했는데 “대통령에 사과”
문창극은 사퇴하며 “저를 거두어주는 분”
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 실장은 대변인에게 ‘퉁’
책임자가 아닌 심판자 혹은 피해자로 둔갑
사과할 줄 알았더니 사과 받거나 역공에 나서
대통령이 인사 잘못했는데 “대통령에 사과”
문창극은 사퇴하며 “저를 거두어주는 분”
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 실장은 대변인에게 ‘퉁’
책임자가 아닌 심판자 혹은 피해자로 둔갑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다. 너무 죄송하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머리를 깊이 숙였습니다. 지난 17일, 충북 오송 국립보건연구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투명하게 공개해서 빨리 알리고 (메르스가) 종식으로 들어가도록 책임지고 해주기 바란다”고 질타를 쏟아냈습니다. 병원장은 면담 내내 송구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이 국정 실무를 맡은 장차관 등을 질타하는 것이면 모르되, 민간인을 불러 국정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다소 낯섭니다. 병원장이 환자 치료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삼성서울병원 현장이 아니라 충북까지 불려가 찍힌 사진이라는 점도 화제가 됐습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사과를 받고 있는 형국” “사과를 받아도 국민이 받아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사과하지 않고 사과받는 대통령의 모습은 처음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2년 동안 정부의 실책이 드러나거나 국가 재난사태가 발생했을 때마다 행정부의 수반으로써 국민들 앞에 사과하거나 책임을 지겠다는 말보다는, 담당 부처를 질타하며 제3의 ‘심판자’ 역할을 맡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심판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박 대통령의 아랫사람들도 정부의 실책이나 국가 재난사태가 발생하면 국민 뿐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사과해야 하는 형국이 됐습니다.
<더 친절한 기자들>에서 지난 2년간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스타일’을 사진과 함께 돌아봤습니다.
■ 사과하는 대신 사과받는 ‘셀프사과’
2013년 5월, 대통령이 직접 ‘깜짝 발탁’한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습니다. 불통인사, 밀실인사라는 말을 들으며 청와대가 천거한 장차관 후보가 6명이나 낙마했던 ‘인사참사’ 직후의 일입니다. 국민적 분노가 들끓자, 청와대는 수차례 연기 끝에 5월10일 밤 12시가 다 되어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남기 대통령홍보수석이 읽은 사과문은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청와대 ‘셀프사과’라는 비아냥이 일었습니다.
국민이 아닌 대통령이 ‘사과받는’ 일은 2014년 6월 ‘문창극 사태’ 때도 일어났습니다. 역시 대통령에게 직접 낙점을 받았던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6월24일 사퇴하면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 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이도 그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분도 그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민보다 대통령을 향한 ‘사과’였습니다.
■ 대신 사과하는 ‘대독 사과’
아랫사람들이 대통령 대신 사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2013년 3월30일 취임 첫 장차관 인선 ‘인사 참사’로 대통령 지지율이 추락했을 때 나온 ‘대독 사과’가 대표적인 예로 꼽힙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최초의 ‘대국민 사과’ 비슷한 것이지만, 정확히 대통령의 사과라고 말하기는 애매한데요. 대통령이 아닌 허태열 비서실장이, 그것도 대통령이나 비서실장 명의가 아니라 ‘인사위원장’ 명의로 내놓은 ‘대독 사과’였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을 대신한 비서실장을 다시 대신해 김행 대변인이 달랑 두줄짜리 사과문을 읽었습니다. ‘대타의 대타’를 세운 셈입니다. 이때 ‘대독 사과’ (사진) 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또 다른 ‘대독 사과’는 지난 4월 성완종 리스트 의혹 파문과, 그 여파로 사임한 이완구 전 총리 인선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을 때입니다. 여당과 보수언론에서마저 ‘대국민 사과를 왜 건너뛰는가’라는 지탄이 빗발쳤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대국민 사과가 있을 것’이라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마저 압박에 나섰습니다.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은 4월28일 건강악화를 이유로 김성우 홍보수석에게 대국민 메시지를 대독시켰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중략) 안타깝지만 국무총리의 사의를 수용했다”로 시작한 대독 사과의 내용은 ‘남탓’으로 채워졌습니다.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오늘날같이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사면한 참여정부 탓이었습니다.
■ 지각사과 / ‘유체이탈’ 사과
박 대통령의 사과는 종종 시기가 너무 때늦거나, 대국민 사과다운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국정을 총괄하는 책임자로서의 사과보다는, ‘심판자’나 ‘피해자’에 가까운 발언을 먼저 내놓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재난, 재해 등 대형참사가 발생한 경우 빠르게 대국민 메시지를 내며 책임지고 국면을 수습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해 훼리호가 침몰한 지 9일만에(“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는 3일만에 사과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화성 씨랜드 화재 뒤 3일만에(“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구 지하철 화재 뒤 3일만에 사과(“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했습니다.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하기도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일만인 4월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보며 저 뿐 아니라 국민들께서 경악과 분노로 가슴에 멍울이 지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대통령도 피해자라는 입장에서 한 발언이었습니다. 열나흘째만인 4월29일이 되어서야, 박 대통령은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이번 사고로 많은 생명을 잃게 돼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는 ‘공식 사과’를 내놨습니다. 또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이고 철저한 국민 안전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당국에 주문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국민 담화나 기자회견 등의 형식으로 직접 국민 앞에 나서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각료들을 앞에 두고 앉은 채 유감을 표명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아쉬운 면으로 꼽힙니다. 최초로 박 대통령이 두 다리로 서서 국민에게 직접 ‘대국민 담화’를 통한 사과를 발표한 것은 세월호 참사 35일째인 5월19일이었습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구조 업무가 사실상 실패한 책임을 물어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 박 대통령의 ‘사과 회피’ 여전
지난 2년간 사과를 회피해 온 박 대통령의 모습은 메르스 사태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처음으로 메르스를 언급한 박 대통령은 사과 대신에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며 정부 대응을 질책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반복했습니다. “국민 앞에 머리숙여 사죄드린다”는 대국민 사과는 정부가 아니라 지난 12일 삼성서울병원이 먼저 했습니다. 하지만 방역 의무는 어디까지나 민간병원이 아닌 정부의 관할입니다. 민간병원장이 대통령 앞에서 사과하는 모습에 쏟아지는 비판은,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국가가 어디로 실종됐는지에 대한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정유경 김명진 기자 edge@hani.co.kr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 지난 2013년 5월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위해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새 정부 인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동아일보 2013년 4월1일치 사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사건과 관련해서 지난 해 5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사과담화를 발표하는 도중 사건희생자의 이름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과 직원들이 지난 6월7일 오전 메르스 관련 현황과 대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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