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출입증을 패용한 황교안 국무총리(왼쪽),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국무회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동개혁·경제활성화법 언급
“자동폐기땐 국민이 용서 안해”
사실상 야당 심판 주문하며
친박 출마자들엔 힘 실어주기
“자동폐기땐 국민이 용서 안해”
사실상 야당 심판 주문하며
친박 출마자들엔 힘 실어주기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가 ‘주문’한 법안 처리에 미온적이란 이유로 국회를 정쟁 집단으로 규정하며 사실상 ‘총선 심판론’을 제기했다. 야당이 ‘노골적 선거 개입’이라며 비판하고 나서는 등 박 대통령의 선거 중립 위반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이제 국민 여러분께서도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주시고 앞으로 그렇게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심 법안’을 국회가 처리하지 않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심판’을 호소한 것이다. 야당에 대한 비판과 함께 여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24분에 걸친 국무회의 머리발언을 통해 관심 법안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국회가) 국민들의 삶과 대한민국 경제를 볼모로 잡고 있다. 국무회의 때마다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단지 메아리뿐인 것 같아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또 “국회가 이것(법안)을 방치해서 자동폐기된다면 국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현직 장관과 전직 청와대 참모들의 내년 총선 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고, 대구·경북(티케이)의 ‘현역 물갈이’가 정치쟁점으로 떠오른 시점이라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자신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장관 출신 또는 청와대 참모들을 ‘국민을 위해 일하는 진실한 사람들’로 규정해 총선에서 지지해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읽힐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야당은 물론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여당 인사들까지 싸잡아 ‘진실하지 않은 심판 대상’으로 낙인찍는 측면이 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몰아세운 지난 6월25일 국무회의 발언과 맥락이 같다. 노골적 전략공천은 어렵더라도, 이른바 ‘박심’을 내세우는 친박계 인사들을 ‘소극적 후원’ 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국민 심판론’을 통해 청와대 참모 출신, 장관 출신 인사들에 대한 우호적 시선을 확보하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을 상대로 ‘야당 심판’을 주문한 측면도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매일 민생을 외치고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치적 쟁점과 유불리에 따라 모든 민생 법안들이 묶여 있는 것은 국민과 민생이 보이지 않는다는 방증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화 이슈로 정국을 소용돌이에 빠지게 한 장본인이다. 박 대통령이 거론한 법안들은 논란도 적지 않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법안 처리가 정말 필요하다면 야당 대표를 단독으로 만나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특히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고 주장한 것은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자기가 요구하는 노동개혁에 반대하고, 자기가 주장하는 가짜 민생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모조리 총선에서 떨어져야 한다는 협박”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장관, 비서관들을 줄줄이 총선에 내보내는 대통령이 노골적인 총선 개입마저 서슴지 않는 것이야말로 민생을 외면하고 국정을 내팽개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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