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오른쪽)와 서훈 국가정보원장(왼쪽) 등 특사단이 지난 5일 평양에서 열린 만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와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김정은 위원장이 훨씬 화끈하고 통이 큰 것 같다.”(청와대 관계자)
대북 특사단을 맞이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였다. 청와대 안에서도 예상한 것 이상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5일 김 위원장이 보여준 모습은 과거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자신감이 있는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특사단이 방북한지 3시간 만인 5일 저녁 6시 이들을 접견하고 만찬을 했다. 비록 이날 김 위원장 접견과 만찬이 지난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남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에서 사전 조율된 것이지만 김 위원장이 흔쾌히 수락을 한 것이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특사단에게 면담일정을 알려주지 않다가 마지막날 만났다. 2007년 8월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방북했을 때나 2005년 6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은 마지막날 이뤄졌다. 청와대 안에서도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 6일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6일자 1면에 실린 사진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대표단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김 위원장이 걸어가며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만찬에서도 파격을 선보였다. 김 위원장은 특사단 만찬과 접견을 조선노동당 본관 진달래관에서 진행했다. 남쪽 인사들이 노동당사 본관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당 청사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사용하는 최고지도자 집무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혁명의 수뇌부', ‘당중앙' 등으로 최고지도자를 언급할 때면 상징적으로 3층짜리 건물인 노동당 본청사의 사진을 내보내곤 한다. 건물 꼭대기 중앙에 노동당 마크가 새겨져 있고, 그 위에 노동당기가 펄럭이는 본청사는 평양시 중구역 창광거리(1단계) 창광동에 자리 잡고 있다. 최고지도자의 업무를 보좌하는 서기실(비서실)도 이 건물에 있다. 노동당 본청사는 우리의 청와대 격으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나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등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회의가 대부분 이곳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 등 특사단이 지난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수석특사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정은 위원장, 서훈 국정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청와대제공
만찬에서는 여태 공식 외교무대에 나타나지 않았던 자신의 부인 리설주를 대동했다. 리설주가 남쪽 인사를 만난 것은 2005년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에 응원단으로 방남한 이후 처음이다. 만찬과 접견 시간 역시 4시간 12분으로 이례적으로 길었다. 지난달 김여정 특사 방문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 만찬 시간이 2시간 40분여였던 것과 견주면 1시간 30분 가량 긴 것이다. 그동안 북한에서 퍼스트레이디라는 존재가 없었지만 이번 대북 특사방문을 통해 리설주가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 외교무대에 데뷔한 셈이다.
대북 특사단을 맞은 면면도 화려했다. 김 위원장은 대북 특사단 접견과 만찬에 핵심 대남라인을 총출동시켰다. 방남 특사였던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배석했고, 이어서 진행된 만찬에는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맹경일 통전부 부부장, 김창선 서기실장이 추가로 참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보여준 모습은 북쪽이 보여줄수 있는 최대한의 환대를 한 것”이라며 “그만큼 김 위원장이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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