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특별사절단 수석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앞줄 왼쪽)이 지난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왼손에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가 들려 있다. 맨 오른쪽에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보인다. 청와대 제공
“오늘 만나시게 됩니다”
지난 5일 오후 3시40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별사절단은 숙소인 북한 고방산초대소에 여장을 풀자마자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에게 희소식을 들었다. 김 통전부장은 특사단에게 이날 오후 6시부터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이 특사단을 접견하고 만찬을 함께 한다고 알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끝까지 면담일정을 알려주지 않으며 방북 특사단의 애간장을 태웠던 ‘관례’를 깬 파격이었다. 김 통전부장이 소식을 알리기 전까지만 해도 특사단 사이에서는 ‘오늘은 김 위원장을 만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소식을 들은 특사단 가운데 한명은 ‘일이 잘 풀리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 두번째) 등 대북 특별사절단이 북한을 방문한 지난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 세번째)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는 지난 5~6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대북 특사단의 ‘평양 방문 뒷이야기’를 8일 공개했다. 특사단은 1박2일 내내 경호, 음식, 숙소 등에서 파격적인 의전과 세심한 환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쪽이 제공한 리무진 차량을 타고 오후 6시께 조선노동당 본부에 도착한 특사단은 정문 현관에 나와있던 김 위원장의 마중을 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사단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몇 미터 앞, 현관문 앞에 김 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나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김 위원장에게 하차 영접을 받은 셈이다. 특사단은 현관 로비에서 일출 사진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뒤 1시간 남짓 김 위원장을 접견했다. 김 위원장은 정 실장이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하려 일어서자 같이 일어서 걸어 나와 서서 친서를 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사단이 김 위원장이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접견이 시작된 뒤 정 실장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미연합훈련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는 메모를 바탕으로 발언을 하자 “여러분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이해한다”며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4월말 남북 정상회담 개최, 정상간 핫라인 개설 등 6개항은 1시간여의 접견에서 모두 합의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담은) 베를린 선언 등 문 대통령이 제안한 메시지를 아주 소상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며 “문 대통령의 축적된 노력과 김 위원장의 숙성된 고민이 합쳐져 6개항 합의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지난달 방한한 김여정 부부장과 김영철 통전부장에게 비핵화, 핵·미사일 실험 유예, 군사회담, 문화 교류 등 6개항에 관해 모두 이야기를 했고, 이를 보고받은 김 위원장이 이미 답안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한 특사는 “특사단의 만남에 관해 김 위원장이 전 세계의 시선과 우리 국민들이 갖는 기대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한 특사는 “북한으로서도 쉽지 않을 몇 가지 난제를 말끔히 푸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매끄러운 합의 뒤 열린 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특사단은 접견 10분 뒤 바로 옆 진달래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와 인사를 나눴다. 김 위원장 부부는 5명의 특사단 한명 한명과 손을 잡고 반갑다고 인사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북한 음식이 입에 맞습니까”라며 특사단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만찬상에는 와인과 수삼삼로주 등 술과 온반 등이 올랐는데 참석자들은 주로 평양소주를 마셨다. 특사단은 “화려하고 극진한 환대라기보다는 세심하고 정성 어린 대접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 쪽은 지난달 방남 당시 남쪽 인사들이 평양냉면과 온반을 궁금해하자 만찬엔 온반을, 이튿날 오찬엔 옥류관에서 냉면을 냈다. 청와대 관계자는 “6일 오찬에서 김영철 통전부장이 특사단에게 ‘평양 인민들은 냉면을 두 그릇씩 먹는다’고 권했고 이에 한 특사는 녹두지짐을 먹어 배가 부른데도 한그릇을 더먹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옥류관 냉면은 꿩으로 먼저 육수를 낸 뒤 닭으로 다시 국물을 우려내는 방식으로 오래 끓여 남쪽의 평양 냉면과는 맛이 달랐다고 한다.
북한은 특사단에게 국빈급 경호를 제공하면서도 ‘열린 경호’를 했다. 특사단이 고방산초대소 한층을 쓰는 동안 북쪽 경호원들은 양쪽 출입구 쪽에만 있었을 뿐 내부로 들어오지 않았다. 과거처럼 일대일 마크도 없어 특사단은 경내 산책을 비교적 자유롭게 했다고 한다. 숙소에서는 주요 <한국방송>, <문화방송>, (와이티엔>(YTN) 등 한국 방송을 보고, 다음이나 네이버 등 국내 인터넷 사이트를 접속하는데도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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