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그야말로 숨가쁘게 달려온 두달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1월1일)부터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수락까지 이어진 지난 두달여의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연초만 해도 전쟁 위기로 치닫던 분위기가 남북, 북-미 대화 분위기로 반전되기까지는 채 70일이 걸리지 않았다.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과 속도였다.
대화의 싹은 1월1일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 관계를 개선해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 해로 빛내야 한다”며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내왕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창겨울올림픽에 대표단 파견과 이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접촉도 언급했다. 사흘 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평창겨울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9일엔 판문점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나선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고, 남북은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고위급 대표단과 선수단 등을 파견한다’는 데 합의했다. 남북 대화의 문이 열리자 문 대통령은 10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올해가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원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2월 들어 대화 국면은 급물살을 탔다.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파격에 파격이 이어졌다. 9일 방남한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10일 문 대통령과의 청와대 접견, 오찬에서 김 위원장의 친서와 함께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주실 것을 요청한다”며 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전했다. 25일 평창겨울올림픽 폐막식에는 김 위원장의 측근이자 대남 사업을 총괄하는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참석해 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김 부위원장 등 북쪽 대표단은 남쪽에 머문 2박3일 동안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과 만나 비핵화와 북-미 대화 등 현안과 관련한 남쪽의 의견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3월에 들어서서는 구체적인 성과가 쏟아졌다. 3월5~6일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 대북 특사단은 도착 3시간 만에 김정은 위원장과 접견-만찬을 하며 △4월말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개최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 확인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북-미 대화 △대화 기간 중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 △남쪽 태권도 시범단과 예술단의 방북 공연 등 6개 항에 합의했다. 북-미 대화의 충분한 조건을 만들었다고 판단한 문 대통령은 8일 곧바로 정 실장과 서 원장을 미국으로 파견했다. 두 사람은 예정보다 하루 빠른 8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고, 접견 45분 만에 그에게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금년 5월까지 만날 것”이라는 답을 받았다. 새해 첫날부터 68일 만에, 김여정 특사의 방남부터는 29일 만에 거둔 결실이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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