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 동상 아래서 문재인 대통령과 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이 23일 오전(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 서 열린 양해각서(MOU) 체결 및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하노이/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베트남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각)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과 민간인 학살에 대한 포괄적 사과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베트남전과 관련해 한국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문 대통령이 세번째다.
문 대통령은 이날 베트남 주석궁에서 열린 쩐다이꽝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렇게 말한 뒤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협력 증진을 위해 힘을 모아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열린 ‘호찌민-경주세계엑스포 2017’ 행사에서 영상축전을 통해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2년까지 31만2천여명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이 기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80여건, 피해자 수는 9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꽝 주석은 문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베트남전 과거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진심을 높이 평가한다.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양국 간 우호관계를 공고히 하며 상생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더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애초 이번 베트남 방문에서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개적이고 명확한 사과에 나설 뜻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가 동족상잔 등의 내부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우려하며 난색을 표해 사과 수위가 크게 낮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식 사과라고 하면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와 배상 등이 따라야 할 텐데, 그런 의미에서의 공식 사과는 아니다”라며 “지난번과 비슷한 수준의 유감 표명”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거듭 “유감”을 언급한 것은 신남방정책의 핵심 파트너인 베트남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가해자로서 과거사 문제부터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내에서도 “베트남에 공식 사과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돼왔다.
현재까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12월 쩐득르엉 주석과 한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불행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고, 2001년에는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줘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베트남을 방문해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 앞서 베트남 독립 영웅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호찌민 전 주석 묘소에 헌화하고, 오후엔 생전 그의 집무실 등을 찾았다. 그는 방명록에 “국민과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한 호찌민 주석님의 애민정신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라고 썼다.
하노이/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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