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다리 친교산책
세계사 유례없는 야외 ‘밀담’
배석자 없이 무릎 맞댄 두 정상
속내 터놓은 ‘설득전’ 생생히 공개
북-미 정상회담 성패 걸고
문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설득
김 ‘체제안전 보장’ 확답 구한 듯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27일 오후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교 산책’은 2018 남북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였다. 두 정상은 아무 배석자 없이 단독으로 40분 동안 산책과 대화를 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남북 관계 개선 등에 관해 내밀한 일대일 담판을 벌였다. 세계는 숨죽이며 판문점 도보다리 끝 의자에 앉아 나눈 두 정상의 공개 ‘밀담’을 지켜봤다.
두 정상은 오후 4시36분 판문점 자유의 집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도보다리 쪽으로 향했다. 3분 뒤 두 정상은 도보다리에 다다랐다. 남쪽은 두 정상의 산책을 위해 1953년 중립국감독위원회가 만든 이 다리를 한반도기 색인 하늘색으로 새 단장했다. 다리 끝에서 멈춘 두 사람은 짙은 갈색 녹이 슨 101번째 군사분계선 표지물을 살폈다. 오후 4시42분.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표지물 바로 옆에 마련된 고동색 나무 벤치에 앉길 권했다. 두 사람은 비스듬히 내리는 봄볕을 받으며 무릎을 마주 댔다. 이때부터 30분간 세계 외교사에 유례없는 야외 공개 ‘밀담’이 이어졌다. 단 한명의 최측근도, 취재진도 없는 둘만의 시간이었다.
문 대통령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뭔가를 짚어보는 모습, 두 손을 모아 뭔가를 간절히 담아내려는 모습, 이따금씩 콧방울을 만지는 모습과 김 위원장이 뭔가를 간곡히 설명하는 모습, 두 손을 모아 듣는 모습, 간혹 안경을 고쳐 쓰고 왼쪽 다리를 펴는 모습,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웃는 모습이 음성 없이 생중계됐다.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가 귀를 세웠지만, 들리는 소리는 갈대와 바람, 새소리, 멀찍이 떨어진 취재진의 셔터 소리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이 풍경은 사실 두 정상에겐 혼신의 힘까지 짜내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절정의 순간이었다. 남북 회담과 한달 뒤 이어질 북-미 회담의 성패가 걸린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오롯이 자신만의 힘과 능력, 매력으로 상대를 마주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김 위원장을 강력히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달여 뒤 열릴 북-미 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결실을 맺으려면 김 위원장의 확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 역시 적대 행위 중단과 체제 안전 보장이란 목표에 대한 문 대통령의 확실한 의중과 약속을 확인하려 한 것 같다. 상대를 설득하려고 애를 쓰는 두 정상의 기운은 화면 너머로 생생하게 전달됐다. 두 사람은 최측근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과 속내도 허심탄회하게 나눴을 수 있다.
두 정상은 30분 만인 5시12분 벤치에서 일어섰다. 문 대통령 얼굴엔 옅은 미소가 어렸다. 김 위원장 역시 다소 홀가분한 표정으로 문 대통령에게 말을 건넸다. 두 정상은 갔던 길을 되짚어 자유의 집 앞으로 돌아왔다. 두 정상은 친교 산책이 끝난 지 불과 20분 뒤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친교 산책에 앞서 두 정상은 1998년 6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한 군사분계선 위에 소나무를 기념식수 했다. 문 대통령은 백두산 흙과 대동강물을, 김 위원장은 한라산 흙과 한강물을 소나무에 줬다. 이후 두 사람은 ‘평화와 번영을 심다. 2018년 4월27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이라고 새겨진 표지석 제막식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영상] 남북, 65년만에 전쟁 끝낸다 (판문점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