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고 있다. 한국사진공동취재단
30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 3층 소회의실. 문 대통령이 바로 옆 집무실에서 나오자 수석·보좌관 회의 참석자들에게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문 대통령은 머쓱한 듯 웃음을 지으며 “누가 시킨 거에요? 하여튼 뭐 기분은 좋네요”라며 함께 박수를 쳤다.
남북정상회담 뒤 처음 열린 이날 회의의 주제는 정상회담 성과와 후속조치 논의였지만 참모들은 궁금증을 억누르지 못했다. 회의 도중 질문들이 쏟아졌다. 참모들의 질문 공세에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뒷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인상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솔직 담백하고 예의가 바르더라”고 했다. 이에 주영훈 경호처장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부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만찬장에 올라가려 할 때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이 먼저 타도록 손짓을 했고, 리설주 여사가 타려하자 슬그머니 손을 잡아 김정숙 여사가 먼저 타도록 배려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1953년생이고 김 위원장은 1984년생으로 문 대통령이 31살 위다.
전 세계에 묵음으로 생중계 된 김 위원장과의 도보다리 벤치 밀담에 관해 문 대통령은 “도보다리 산책에서 대화를 나눌 때 대화에만 집중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수 없었는데 회담 뒤 청와대에 돌아와 방송을 보니 내가 봐도 보기 좋더라”며 “새 소리가 나는 광경이 참 보기 좋았다.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고 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나쁜 것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비무장지대를 잘 보존하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큰 자산이 돼 돌아올 것이다”고 덧붙였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도보다리에서는 주로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묻고 문 대통령이 말씀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핫라인을 두고 ‘우문현답’을 주고 받은 이야기도 전했다고 한다. 회담 도중 김 위원장이 “이 전화는 정말 언제든 걸면 받는 거냐?”고 ‘천진한’ 물음을 던지자 문 대통령은 “그런 건 아니다. 서로 미리 사전에 실무자들이 약속을 잡아놓고 전화를 걸고 받는거다”라고 답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농구광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이 남북 스포츠 교류를 농구로 시작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사실도 이야기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 프로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을 초정해 여러차례 농구경기를 관람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남북 스포츠교류를 할 때 경평(서울-평양) 축구보다는 농구부터 하자”면서 “과거 세계 최장신이던 리명훈(235㎝) 선수가 있을 때만해도 우리가 강했는데 은퇴한 뒤엔 약해졌다. 이제 남한의 상대가 안될 것 같다. 남한엔 2m가 넘는 선수가 많지요?”라고 물었다고 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 위 소떼 길에서 한 기념 식수서 쓰인 백두산 흙의 사연도 풀어놨다. 문 대통령은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에게 들었다면서 “백두산은 화산재로만 덮여서 백두교에서 장군봉 마루까지는 흙이 없어서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풀인 만경초를 뽑아 그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 모아모아 가져온 것이라고 하더라. 그냥 몇 삽 퍼서 가져온 게 아니라 정성이 담겨있는 흙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북한의 평양 시간 수정에 관해 ‘누군가 미리 준비해온 것 아니냐’는 한 참모의 물음에 “그 자리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같이 있었는데 김 부부장도 ‘저도 여기서 처음 듣습니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 도중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큰 일을 하셨다. 노벨 평화상을 받으시라’는 축전을 보내왔다는 보고를 듣고 “‘노벨’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으셔야 하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한편, 이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을 만나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보고 하면서 “김 위원장이 ‘무력 사용은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것 아니냐며 문 대통령에게 불가침 약속을 확약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보여주기식 (북-미) 대화를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 장관은 또 “남북 정상이 개성에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것 외에 문 대통령이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문제도 계속 협의하자’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성연철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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