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께 열릴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평양과 판문점 두곳으로 압축되고 있다. 북-미는 두 곳을 두고 막바지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선택한다면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에 버금가는 극적인 역사적 효과를 고려한 것일 수 있다. 닉슨 대통령이 첨예한 냉전의 시기에 문화대혁명 와중이던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 주석과 만나 극적인 미-중 화해를 이뤄 냉전의 축을 흔든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 전까지 핵·미사일 공방을 주고받던 북한의 수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세계사적 사건이다.
트럼프의 복심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최근 움직임도 닉슨의 방중을 만들어낸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을 떠올리게 한다. 1971년 7월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베이징을 극비 방문해 저우언라이 총리와 미-중 수교 원칙에 합의했고, 이를 기반으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미-중 화해가 이뤄졌다.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부활절 연휴 동안 평양을 극비리에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비핵화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뒤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비핵화, 평화협정, 북한의 개혁개방 등으로 이어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닉슨 대통령의 미-중 화해를 뛰어넘는 역사적 평가를 기대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데리고 귀환할 수 있다는 점도 11월 중간선거를 염두에 두고 ‘외교적 성과’를 각인시켜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려할 수 있는 점이다.
판문점 카드도 여전히 유효하다. 판문점은 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에서 북-미 회담 장소로 논의됐던 2~3곳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판문점은 파격성 면에서는 평양보다 덜하지만 상징성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남북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은 지난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와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1일 “분단을 녹여내고 새로운 평화의 이정표를 세우는 장소로는 판문점이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만일 판문점이 북-미 회담 장소가 된다면 (1989년 미-소 정상이 만나 냉전 종식을 공식 선언했던) 몰타회담보다 더 상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달 말께 열릴 북-미 정상회담 장소 후보지로 평양(위쪽 사진)과 판문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AP 연합뉴스
판문점은 까다로운 의전을 과감히 생략하고 북-미 두 정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의제에 집중한 회담을 진행하기에도 맞춤한 장소다. 남북 정상회담 때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의전 절차를 최소화한 채 도보다리 산책 등 밀도 높은 회담을 벌였다. 청와대 입장에서 본다면 판문점은 문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속도감 있는 남북 정상회담 후속조치 이행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장소다. 청와대는 판문점에서 북-미 회담이 열리고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바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 김 위원장과 합류해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다룰 남-북-미 정상회담을 여는 것이 최상이라고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북-미 정상회담 전에 계획했던 별도의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절차도 생략할 수 있다.
일단 청와대는 북-미 회담의 당사자가 아닌 만큼 장소에 관해 최대한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지금 북-미 회담 장소와 시간 등은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며 “결정의 주체들이 결정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제3자가 개입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북-미 정상회담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박민희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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