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아래 삼지연 연못 뒤 다리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북쪽이 백두산 인근의 삼지연초대소를 비워 놓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루를 더 머물라고 제안했다고 청와대가 21일 밝혔다. 두 정상이 별이 쏟아지는 백두산 아래 산장에서 한밤 대화를 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었던 셈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쪽 관계자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 대통령이 (백두산 정상과 천지를) 올라갔다 내려와서 혹시라도 하루 더 머물 수 있으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별히 준비를 해놓으라고 해서 삼지연초대소를 비우고 하루 더 머물 수 있도록 준비를 했고, 우리 쪽에 이를 제안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우리 쪽 사정으로 그 제안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3일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으로 떠나 24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일정이 잡혀 있다.
실제로 백화원영빈관에서 열린 문 대통령의 식수 행사(19일)에서, 북쪽이 준비한 표지석에는 ‘평양 방문을 기념하여 2018.9.18~21’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엔 제작 과정의 실수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북이 실제 문 대통령이 하루 더 체류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김 대변인은 “북쪽에선 아마 그런 정도까지 성의를 갖고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두 정상은 백두산 장군봉의 향도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천지 쪽으로 내려간 뒤 천지 가장자리까지 앞장서서 걸어갔고,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팔짱을 낀 채 뒤를 따랐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중국과 국경선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고, 김 위원장은 손으로 가리키며 “저쪽 흰 말뚝이 보이시죠? 거기부터 시작해서 안 보이는 왼쪽 서쪽 국경선까지가 중국과 조선의 국경선”이라고 설명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두 정상은 20일 백두산 천지 산책을 마친 뒤 삼지연초대소 잔디밭에 마련된 즉석 야외 천막에서 식사를 했다. 북쪽은 백두산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요리를 내놨다고 한다. 천지에 사는 산천어 요리, 백두산 산나물, 들쭉아이스크림 등이 두 정상의 식탁에 올랐다. 김 대변인은 “초대소 안에도 식당이 있지만, 날씨가 좋고 삼지연 연못가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일부러 (북쪽에서) 천막을 치고 점심을 대접했다”며 “식사 시간 동안 7명의 북쪽 실내악단이 주로 ‘마이 웨이’, ‘예스터데이’ 등 오래된 팝송을 2시간 동안 연주했다”고 말했다. 천막 안에는 한반도기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꽃 그림이 걸려 있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4대 그룹 회장 등은 김 위원장에게 다가가 술잔을 건네기도 했다. 식사 뒤 두 정상은 따로 삼지연 연못 위 다리를 걸었다. 이를 본 리설주 여사는 옆에 있던 김 대변인에게 “아, 도보다리 걸어가실 때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때 너무 멋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19일 백화원영빈관 정상회담에서 결정됐다고 했다. 그는 “(서울 답방은) 두 정상이 공동기자회견을 하기 전 백화원영빈관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관련 문구까지도 직전 수정이 됐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또 문 대통령이 5·1 경기장에서 관람한 대집단체조가 원작인 ‘빛나는 조국’과는 내용이 70%가량 달랐다고 했다. 그는 “북쪽 고위 관계자가 ‘9·9절 때 내가 봤던 ‘빛나는 조국’하고는 70%가 바뀌었고 (원래 내용은) 30% 정도가 남았더라. 9·9절 뒤로 5차례가량 대집단체조를 했는데, 나머지 닷새 동안 70%를 바꿨는지 내가 봐도 신기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 고위 관계자가 ‘애초 ‘빛나는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70여년 역사를 서술하는 내용으로 조국 창건, 전쟁, 폐허, 건설, 김정은 위원장 시대의 번영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였는데, 이데올로기적 내용들은 다 빠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3장 이후의 특별장, 종장은 완전히 새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머문 총 시간은 54시간이며, 이 가운데 김 위원장과 함께한 시간은 17시간5분인 것으로 집계됐다”며 “공식 회담은 두번에 걸쳐 3시간52분 동안 했다”고 전했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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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평양 남북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