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후 (현지시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이 집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석한 후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연합뉴스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17일 교황청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와 이어진 문 대통령의 기념 연설은 최근 전례를 찾기 어려운 교황청의 배려 속에 이뤄졌다.
이날 미사는 교황청 국무원장(국무총리 격)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63)이 집전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할 때 수행했고, 2007년 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교황청 외교차관으로 준비를 총괄했다. 그는 2013년 한국-교황청 수교 50주년 경축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파롤린 추기경은 미사 시작 전 나란히 함께 입장했다. 두 사람은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이 ‘평화’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파롤린 추기경은 “큰 사명을 갖고 계신다. 하느님의 섭리를 행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미사를 시작하며 한국말로 문 대통령 부부에게 환영 인삿말을 전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님, 김정숙 여사님 환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말했다. 미사 참석자들은 추기경의 한국말이 신기한 듯 웃음을 짓기도 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했는데 분량이 긴 그의 강론은 교황청이 세운 라테란 대학교에 박사과정 중인 장이태 신부(경환 프란치스코)가 대독했다.
천주교 신자로 디모테오라는 세례명이 있는 문 대통령은 성가를 따라 부르고, 영성체(성체를 모시는 의식)에 참여하는 등 일반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미사에 임했다. 그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라고 말했고, 영성체가 준비되자 가장 먼저 앞으로 나가 이를 받아 입을 가리고 먹은 뒤, 자리로 돌아가 무릎꿇고 성호를 그었다.
미사는 한시간 가량 진행됐다. 미사에는 문 대통령 부부와 공식 수행원을 비롯해 한국인 신부 100여명과 교민 150여명 등 총 500여명이 참석했다. 성악가 조수미씨와 뉴트 깅리치 전 미 하원 의장의 부인으로 주교황청 미국 대사인 칼리스타 깅리치 등도 참석했다.
이날 미사에는 바티칸 출판사가 한국어와 이탈리아어로 특별히 제작한 미사 경본이 사용됐다. 경본의 표지 그림으로는 가톨릭 성화 전문 작가로 활동하는 심순화 가타리나 화백이 그린 ‘평화’라는 제목의 성화가 쓰였다. 이 작품은 2006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봉정된 것이다. 작품엔 한복을 입은 성모가 색동저고리 차림의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아기 예수는 십자가와 한반도가 그려진 지구를 들고 있다. 주변엔 농악대의 연주에 따라 춤을 추는 한복 차림의 사람들 모습이 담겼다. 심 화백은 “성모의 품에 앉아 계신 성자께서는 평화의 한반도 지구를 들고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아이들을 축복해주신다”며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평화의 춤을 출 날을 고대하며 성모께 이 그림을 바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교황청 출판국이 펴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 경본
문 대통령은 미사를 마친 뒤 약 12분 가량 기념 연설을 했다. 교황청은 미사 직후 특정 국가의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은 ‘매우 독특하고 이례적(unique and exeptional)’이라고 했다. 미사에 참석한 한 수녀는 “교황청에 9년째 있는데 단 한번도 외국 정상이 와서 연설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파롤린 국무원장이 집전한 미사도 좀처럼 없다”며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교황청은 문 대통령의 미사 뒤 연설을 제안한 우리 쪽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혁우 주 교황청 공사는 “(문 대통령 방문) 일정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우리 쪽이 먼저 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자, 교황청에서 무슨 주제로 하겠느냐고 물어왔고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하자는 협의가 이뤄졌다”며 “이후 교황청에서 문 대통령은 무엇을 했으면 하느냐고 해 ‘연설을 하겠다’고 하자 수락했다”고 말했다.
로마/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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