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11일 오후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을 방문해 우상호 원내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임종석(53) 대통령 비서실장은 8일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 등 문재인 정부 2기 청와대 인사 발표를 끝으로 일단 야인으로 돌아갔다. 그는 짐을 내려놓으면서 “우선 아내와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 연말 “체력과 상상력이 한계에 이르렀다. 청와대에 새바람이 필요하다”며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날 후임을 직접 발표한 뒤 자신을 누른 무게감에서 빠져나온 듯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당부를 했다. “지난 20개월 동안 대통령의 초심은 흔들린 적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이후 당신에게 주어진 소명과 책임을 한순간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다”며 “올해는 안팎으로 더 큰 시련과 도전이 예상된다. 대통령께서 더 힘을 내서 국민과 함께 헤쳐가실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했다.
현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마친 그에 대한 여권의 평가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대선이 앞당겨지면서 인수위원회도 없이 바로 출발한 청와대가 연착륙에 성공한 것은 재선 국회의원, 서울 정무부시장으로서 쌓은 그의 정무적 감각과 행정 경험 덕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당과 국회 경험이 상대적으로 짧은 문 대통령을 무난히 보좌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추진위원회도 직접 이끌면서 한반도 평화 국면에서 제구실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여권에선 임 전 실장이 국회에 나와 야당 공세에도 능숙히 방어했다는 의견이 많다.
비서실장은 국가안보실장, 정책실장과 함께 ‘장관급 청와대 3실장’ 가운데 한 명이다. 하지만 권한은 그 이상이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모든 문서를 사전에 검토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다수 공직자의 인사 문제를 다루는 인사위원장을 겸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회의와 약속이 많은데 특유의 쾌활함과 낙관적 자세로 비서실을 잘 이끌었다. 수석실별 분권을 중시하는 리더십도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청와대 일각에서는 전병헌 초대 정무수석 후임에 정치적 중량감이 다소 떨어지는 한병도 수석을, 의전비서관에 자신의 최측근인 김종천 전 비서관을 기용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두 사람 모두 임 전 실장이 학생운동을 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가까웠던 인사다. 그중 김 전 비서관은 청와대 인근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면직 처리됐다. 민정수석실의 특별감찰반원들의 비위 사실까지 적발돼 청와대 기강 해이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비위 혐의를 받는 김태우 전 특감반원이 제기한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은 정국 논란으로 번졌다. 모두 임 전 실장이 총괄 관리하는 곳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지난해 10월 말, 대통령이 순방을 나간 뒤 선글라스를 끼고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현장을 시찰한 뒤 “자기 정치를 한다”는 야권의 공격도 받았다.
정치권에선 ‘자연인 임종석’의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특히 정치적 무게감도 비서실장 임명 전과 크게 달라졌다. 일각에선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 후보군에 넣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의 정치적 여정은 전화위복이란 표현과 잘 호응한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국회의원이 되고 재선에 성공했으나 2008년 낙선했고, 2012년엔 공천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민주당 사무총장임에도 보좌관 수뢰 혐의로 공천에서 배제됐다. 2016년 총선에선 당내 경선에서 밀렸다. 2017년 대선 땐 ‘박원순 후보 캠프’에서 출발했으나, 문 대통령 제안으로 ‘문재인 사람’이 됐다. 당시 그는 문재인 후보에게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십니까?”라고 물었고, “우리 사회의 주류를 교체하고 싶다”는 답을 들은 뒤 캠프에 합류했다.
청와대 핵심 인사는 “이제 임종석에게는 여러 길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각을 해서 행정 경험을 더 쌓을 수도 있고,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은 만큼 내년 4월 총선에서 중요한 선거지역이나 험지로 분류한 곳에 출마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서울시장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그가 차기 총선으로 원내에 들어간 뒤 ‘더 큰 행보’를 모색할 것이란 시각이 많다.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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