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유관순 열사의 조카 유장부씨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일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힘을 모아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할 때 한국과 일본은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것”이라며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역사를 거울삼아 한국과 일본이 굳건히 손잡을 때 평화의 시대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미독립선언서는 3·1독립운동이 배타적 감정이 아니라 전 인류의 공존공생을 위한 것이며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로 가는 길임을 분명하게 선언했다”며 “(또) ‘과감하게 오랜 잘못을 바로잡고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여는 것이 서로 재앙을 피하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임을 밝혔다.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우리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 시절 저지른 식민지배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줄 것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과거사에 매몰되면 안 된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최근 한-일 관계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해당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일본 정부가 반발하고, 우리 군함을 향해 일본 초계기가 근접비행을 하면서 악화한 상태다. 문 대통령은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일본도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에서 같이해야 한다는 뜻이 강하다”고 전했다. 이날 기념사에서 일본에 관한 부분은 연설 뒷부분 일곱 문장 정도로 비교적 간략하게 언급됐다.
일본 정부는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노가미 고타로 관방부장관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기념사를 언급하면서 “대일관계,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가미 부장관은 이어 “한일 관계는 여전히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일본 정부로서는 여러 문제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토대로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일본 언론들도 이날 문 대통령이 직접적인 일본 비판을 피했다는 분석을 많이 했다. <교도통신>은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우선시해서 일본과의 대립 확대를 피하려는 생각을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신호가 당분간 한-일 관계 회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친일청산을 추진하고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되 남북대화를 비롯한 현안에서는 일본과 협력해 가겠다는 투트랙 원칙에 기반한 의지를 보였다”면서도 “일본 쪽에서 볼 때는 과거사에 방점이 더 찍혀 있다고 볼 것이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의 국내자산에 대한 압류 절차 등의 일정이 있어, 상반기 동안은 한-일 관계의 냉각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나 10월 일본의 새 천황 즉위 등을 계기로 관계 회복의 모멘텀을 찾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성연철 박민희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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