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이틀 전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담과 관련해 “남북에 이어 북-미 간에도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상 첫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을 통해, 한반도가 과거 전쟁과 같은 적대적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못을 박은 셈이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진행될 북-미 간 실무협상이 매우 중요한 만큼 이를 지켜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 등을 포함한 남북 관계의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들머리 발언에서 이렇게 말한 뒤 “앞으로 이어질 북-미 대화에 있어서 늘 그런 사실을 상기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대화의 토대로 삼아 나간다면 반드시 훌륭한 결실이 맺어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 이번 북-미, 남·북·미 회동 자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과거와의 차이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정전협정 66년 만에 사상 최초로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두 손을 마주 잡았고, 미국의 정상이 특별한 경호 조처 없이 북한 정상의 안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다”며 “특히 양국 대통령이 군복이나 방탄복이 아닌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최전방 지피(GP)를 방문한 것도 사상 최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화살머리고지에서 진행 중인 유해발굴 작업에서 발굴된 유품들을 함께 참관했고, 대한민국에 있어서 안보와 평화의 절박함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이번 판문점 회동으로) 실질적으로 남·북·미 종전 선언이 판문점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며 “형태나 형식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66년 동안 지속된 정전체제의 해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평화체제로 가는 역사적 계기가 된 날이라고 대통령이 직접 못을 박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태까지 평화의 개념이 추상적이었다면, 이제는 평화체제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우리가 눈과 귀로 확인한 점에서 다르다”고 덧붙였다.
북한과 미국이 ‘역사적인 이벤트’를 통해 장기간 이어진 교착상태를 뚫었지만, 이런 상황이 곧바로 남북 관계의 빠른 진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문 대통령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제가 평소에 늘 강조해왔던 것처럼 남북 관계의 개선과 북-미 대화의 진전이 서로 선순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보다) 먼저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는 게 더 중요한 상황”이라며 “김 위원장이 답방을 하기로 했지만, 우선순위는 북-미 회담에 있다”고 말했다. 4차 남북정상회담 또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은 북-미 대화 상황을 지켜보면서 판단할 일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대응과 관련해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정부가) 북-미 관계를 지원하는 데 있어 남북 관계와 과도하게 연결하거나, 북-미 협상 중재안을 대놓고 공개하고 한-미 공조를 강화하는 식으로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가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중재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남북 합의 이행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손을 놓지는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호응 여부에 따라 적극적으로 관계를 다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미 관계가 좋아져 제재 완화·해제 등이 이뤄지면 한국에 공간이 열린다. 예컨대 남북 경협사업 등은 제재 면제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좋아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당장 남북 관계 활성화에 조급해하지 않겠다는 현 정부의 입장은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번 판문점 회동을 통해 북한이 남한과 대화에 나설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의 내부 조직 정비, 남쪽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섭섭함 등으로 인해 남북 관계가 답보 국면에 있었지만, 이번 판문점 회동을 통해 북한도 북-미 정상의 만남에 문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인식했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북 고위급 회담 또는 이를 위한 실무회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사상 첫 남·북·미 정상 회동처럼 앞으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외교적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도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실로 어려운 역사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끊임없는 상상력의 발동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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