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효과 우려해 공개 압박은 않을듯
위기의 한반도, ARF 이후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북한 설득에 또다시 실패한 중국의 행보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더욱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중국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서 한반도 비핵화, 안정화, 평화적 해결이라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다. 궈보슝 중국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미국을 방문 중이던 지난 19일 “중국은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위해 여러 차례 북한을 설득했으나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북한을 설득하는 한편, 미국에 대해서도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낼 수 있도록 일정한 ‘양보’를 권유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미국은 더 완강하다.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는 데 모두 실패한 중국은, 앞으로 북한에 대해 매우 신중한 ‘저강도 압력’을 더해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이 △선양 미국 총영사관 탈북자 3명의 미국행에 동의한 것 △아세안지역포럼에서 10자회동에 동의한 것 등이 이런 ‘저강도 압력’의 예로 꼽힌다.
중국 당국은 이런 움직임이 ‘압력 행사’라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리둔추(44)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중심 한반도문제연구소 주임은 30일 “중국은 북한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5자회담에 반대했지만, 8자회동 또는 10자회동은 5자회담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동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 관계자는 선양 탈북자 3명의 미국행에 대해서도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추방’한 것”이라는 게 중국 쪽 설명이라고 이날 전했다.
중국 당국이 ‘압력 행사’를 부인하는 건 지금까지 중국이 자국의 인권·종교 문제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을 배격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공개적 압력 행사의 역효과를 크게 우려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뚜렷한 상황에서 중국마저 공개적 압력을 행사했을 때 북한이 지나치게 구석에 몰리게 된다는 건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다. 그에 대한 반발로 북한이 미사일 추가 발사나 핵실험 등 더욱 강경한 행동을 취해 판 자체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북한이 크게 반발하기 어려운 저강도 압력을 신중하게 더해감과 동시에, 장기적으로 북한의 대화 복귀를 위한 계기와 명분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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