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고위층 국내 입국사 -
통일부는 17일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입국 사실을 공개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놨다.
하지만 북한 외교관·관리의 탈북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북한이 식량난·에너지난·경제난이 겹친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낸 1990년대엔 북한을 “고장난 비행기”(김영삼 전 대통령)에 비유할 정도로 ‘탈북’이 줄을 이었다.
국내 입국 사실이 공개된 주요 사례만 대충 꼽아도 1991년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의 1등서기관 고영환씨, 1994년 강성산 정무원 총리의 사위 강명도씨, 1994년 김일성종합대 교원 조명철씨, 1995년 북한군 상좌(남한의 중령~대령의 중간) 최주활씨, 1995년 북한 대성총국 유럽지사장 최세웅씨 일가, 1996년 현철해 당시 북한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현 노동당 중앙위원 겸 조선인민군 원수)의 조카인 잠비아 주재 대사관의 현성일 서기관, 1998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북한대표부 김동수 서기관 등이 있다. 1997년 장승길 이집트 대사와 형 장승호 프랑스 경제참사관, 1999년 독일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김경필 서기관 등은 한국으로 오지 않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1990년대는 동유럽에서 공부하던 북한 유학생들의 탈북 행렬도 이어졌다.
정점은 북한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황장엽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노동당 부실장이 1997년 일본을 방문했다 귀국하는 길에 중국 베이징에서 전격적으로 한국으로 온 사건이다. 황 비서는 북한의 핵심 지도부의 일원이자 역대 탈북자 가운데 최고위층이다. 당시 북한 매체들이 “비겁자는 갈 테면 가라”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을 거듭 전할 정도로, 북한 체제의 충격은 컸다. 하지만 이후 황 비서에 버금가는 최고위급 탈북자는 나오지 않았고, 북한 체제도 무너지지 않았다.
남북관계가 상대적으로 좋던 2000년대 초·중반에도 고위급 탈북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0년 타이 주재 북한대사관의 홍순경 참사관이 탈북해 한국으로 왔다. 이 밖에도 정부가 공식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군수공업 분야에서 일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외무역·외화벌이 분야 고위 간부와 그 자녀 등이 탈북해 한국에 왔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에도 고위급 북한 인사의 탈북과 한국행은 끊이지 않았다. 역시 정부가 공식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중앙 부처의 차관급 인사를 비롯해, 국방위원회·정찰총국·통일전선부 소속 간부가 여럿 한국에 왔다. 이들은 소속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해당 기관에서 ‘외화벌이 일꾼’으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북한에서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발생할 경우가 아니라면 북한 체제의 특성상 고위층 탈북 행렬이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며 “북한 체제의 특성상 처절한 권력투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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