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 결과 및 평창겨울올림픽 관련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대형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환영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 올해 들어 두번째 한 정상 통화에서 북-미 직접대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남북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엔 대북 군사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 4일 한-미 연합훈련 연기 발표에 이어 한-미가 내놓은 두번째 ‘대북 안보공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올해 첫 각료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한 통화 내용을 소개하며 “(남북대화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지만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향후 몇주 또는 몇달에 걸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전쟁위기설로 꽁꽁 얼었던 한반도에 새해 들어 훈풍이 불고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동안 연합군사훈련 연기를 매개로 군사적 긴장을 낮추려는 한-미 당국의 노력이 남북 고위급회담으로 이어졌다. 남북이 다음달 개막하는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대표단 파견과 군사당국회담 개최 등에 합의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 평창올림픽이 만들어낸 새로운 한반도 정세, 곧 ‘평창 체제’다.
앞서 지난해 12월부터 평창올림픽 기간과 겹치는 봄철 연합군사훈련 연기 문제 논의에 들어간 한-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 가능성을 내비치자, 4일 연합훈련 연기를 전격 발표했다. 한-미의 첫번째 ‘대북 안보공약’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남과 북은 9일 판문점에서 2년1개월여 만에 마주 앉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당국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남북 고위급회담에 앞서 나온 연합훈련 연기 결정과 군사당국회담을 앞두고 나온 대북 군사행동 잠정 중단 발표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간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의 명분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내세웠다. 그 구체적인 형태가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대북 선제공격이다. 결국 한-미는 두차례 ‘대북 안보공약’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명분을 없애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한 통화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의 대북 군사공격 검토 보도를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남북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엔 대북 군사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북한이 추가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한 비핵화 협상에 나올 경우 북한과 직접대화를 통해 평화적 해법을 찾겠다는 뜻을 더욱 분명히 했다.
문제는 ‘평창 체제’의 두 축인 남북대화와 한-미의 두 가지 ‘대북 안보공약’이 모두 시한과 조건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연합훈련 연기의 유효기간은 올림픽·패럴림픽 폐막 때까지다.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중단은 남과 북이 대화를 지속할 때만 유효하다.
한-미 당국이 연기한 군사훈련은 이르면 4월 중에 진행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훈련은 연기하기로 한 것이지 취소하기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연합훈련 재개 전에 북-미가 대화의 동력을 만들지 못하면 한반도는 이전보다 더한 대치국면에 빠져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남북대화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평창 체제’는 적어도 현재로선 ‘잠정적인 평화체제’일 뿐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이건 시한부로 주어진 기회”라며 “4월 군사훈련까지 100일 안에 어떤 방식으로든 (북-미 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평창 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최소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양자 대화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다자간 안전보장 체제가 ‘평창 체제’ 안으로 들어와야 올림픽 이후에도 평화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대북정책 기조로 삼고 지난해 ‘압박’에만 집중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인 것을 두고 “압박 정책의 결과”라고 자평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대화 노력도 ‘100% 지지한다’고도 밝혔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의 대북 정책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며 “남북대화를 통해 (한반도 정세가) 대화 쪽으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도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남북관계 복원을 북-미 대화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더욱 긴요해졌다. 북으로선 한-미의 두 가지 ‘안보공약’에 화답할 필요가 있다. 평창올림픽·패럴림픽이 끝날 때까지 핵·미사일 실험을 유예한다는 북한의 ‘잠정적 모라토리엄’ 선언이 나온다면 북-미 대화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다자간 안보체제는 기존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외에 북·중 대 한·미의 4자 구도도 거론된다. 미국-이란 핵협상 타결 당시 유럽연합(EU)이나, 미국-쿠바 수교 때 캐나다가 했던 역할처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양심적 중재자’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0일 남북회담에 대한 비공개 브리핑을 마친 뒤 성명을 내어 “남과 북의 대화가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비핵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신뢰 구축 가능성을 높였다”고 환영했다.
정인환 김지은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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