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양겨울올림픽 폐막행사 참석을 위해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25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파견하겠다고 통보해왔다고 통일부가 22일 발표했다. 사진은 2013년 3월7일 새벽 김정은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뒷줄 오른쪽 서 있는 이),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뒷줄 가운데 앉은 이)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던 장재도방어대와 무도영웅방어대를 시찰했다고 <노동신문>이 이튿날 보도하며 공개한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한 2차 고위급대표단을 25~27일 파견하기로 한 것은 ‘대리인’을 통한 남북 최고 지도자의 간접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이 사실상 두번째 특사 파견에 나서면서, 남과 북은 평창올림픽 폐막 이후에도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면서 한반도 정세를 적극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기회의 문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당 정치국원과 중앙군사위원, 국무위원회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등 북 통치체제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 요직을 두루 맡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핵심 측근 중 한명이다. 평창올림픽 개막 때 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특사가 방남한 데 이어, 폐막식에 맞춰 김 부위원장까지 방남하면서 남북관계는 물론 비핵화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현안에 대한 밀도 깊은 협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2일 “(고위급대표단이) 이왕 내려오는 만큼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 발전, 화해 등을 위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이뤄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의 방남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1차 고위급대표단 방남 이후 남북이 지속해온 ‘물밑 대화’의 결실로 보인다. 김 부위원장이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 등의 독자제재 대상이란 점에서, 그의 방남과 관련해 한-미 간 사전 조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 부위원장 방남 문제를 미국 쪽에 언제 통보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지난번 고위급대표단 방문 이후 (남북이) 지속적으로 협의를 해왔다. (남북) 비공식 접촉 진행 과정에서 미국 쪽에 요청(통보)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의 방남에 따라 정부는 대북 특사 파견이란 부담을 일정 부분 덜어낸 모양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전달과 방북 초청에 대한 남북의 후속 대화를 김 부위원장 방남 기간 동안 밀도 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날 김 부위원장의 ‘상대역’(카운터파트)으로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지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서 원장과 김 부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대리인’으로 전면에 나선 것은 향후 이뤄질 남북관계 복원 과정은 물론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고, 북-미 대화로 나아가기 위한 두 지도자의 ‘승부수’적 성격도 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통일전선부는 외교관계와 남북관계를 아우르며 국가전략 전체를 책임지는 포괄적인 기구”라며 “내각기구인 외무성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는 달리 핵 문제와 관련된 발언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온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북이 핵·미사일 시험 유예(모라토리엄) 등 북-미 대화를 위한 선제적 행동에 나선다면, 북-미 대화로 가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김 부위원장 파견을 통해 본격적인 북-미 대화에 앞서 미국의 대화 의지를 시험하는 듯한 모양새”라고 말했다. 제재 대상인 김영철 부위원장 파견에 대해 미국 쪽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북-미 대화의 전망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정인환 성연철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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