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통일 마라토너 강명구씨
“남북통일은 지나간 옛사랑을 추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저녁 달빛 창가에서 목이 터지라 세레나데를 불러서라도 이루어야 할 운명적인 사랑입니다.”
15일 오전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만난 통일마라토너 강명구(62)씨는 지친 기색도 없이 통일 예찬을 쏟아냈다. “내가 달려온 길을 선으로 이으면 유라시아 대륙에 목걸이를 건 모습이 됩니다. ‘평화의 목걸이’인 거죠. 유라시아 대륙에 항구적인 평화가 온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통일’과 ‘평화’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그의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강씨가 다시 남녘 땅을 밟은 것은 1년2개월 만이다. 환갑을 맞은 그는 지난해 9월1일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마라톤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도전을 시작했다. 유럽 북서쪽 끝인 네덜란드를 출발해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터키, 이란,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 16개국 1만5000㎞를 두 다리로 뛰었다. 매일 마라톤 풀코스(42.195㎞)를 쉴 새 없이 달린 셈이다. 그냥 달리기만 한 것이 아니다. 먹을 것과 텐트, 옷을 실어 75㎏에 이르는 쌍둥이 유모차를 직접 밀면서 달렸다.
“온종일 달리다 보면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다리 통증도 참기 힘든 지경에 이릅니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마라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을 중퇴하고 1990년 미국 이민을 떠난 뒤에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에서 생계를 위해 20여년 동안 가게 점원과 식당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2009년 지인의 권유로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인생에 눈을 떴다.
결국 2015년 운영하던 식당을 정리하고 무작정 미국 횡단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125일 동안 5200㎞를 뛰어 미국을 횡단했다. ‘미국을 횡단한 최초의 아시아인’이라는 수식어로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유모차 앞에 ‘남북평화통일’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달린 덕분에 ‘통일마라토너’라는 별명도 함께 얻었다. 이 문구를 붙인 것은 남과 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세상이 되면 북한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성묘도 마음껏 가고, 아버지가 첫 사랑 연인과 거닐었다는 을밀대와 부벽루도 가보고 싶다는 오래된 소원 때문이었다.
지난 14개월 평화통일 염원하며
네덜란드서 중국까지 16개국 달려
거의 매일 마라톤 풀코스 뛴 셈
북한 종단 못 이루고 단둥서 귀국 “유라시아 뿌린 통일 씨앗 잘 자랄 것
이번에 못한 남북 종단길 꼭 재도전” 미국 횡단을 마친 직후인 2015년 7월, 그는 마지막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미국 영주권도 포기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 뒤로 2015년 9월 남한 일대를 일주하며 독도 세월호 추모 달리기를 했고, 2016년 네팔 지진피해돕기 마라톤, 2017년 사드 반대 평화마라톤 등 마라톤으로 통일·평화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덕분에 평화마라토너라는 또 다른 별명도 얻었다. 이번 유라시아 횡단 마라톤은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북한 신의주와 평양, 개성,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이 야심찬 ‘평화·통일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후원 단체 ‘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평화마라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하 평마사)’도 꾸려졌다.
그가 여정을 시작한 지난해 9월만 해도 남북·북미 관계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자 희망의 불씨는 커져갔다. 1년 넘게 평화·통일이라는 목적 하나로 중국 단둥까지 뛰어가면서 북한 땅도 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끝내 북한 종단 마라톤은 성사되지 못했다. 지난달 7일 압록강을 두고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 단둥에 도착한 그는 한 달 넘게 북한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렸다. 평마사도 여러 경로로 북한과 접촉하며 강씨를 도왔지만, 15일 중국 비자 기간이 만료돼 강씨는 눈물을 머금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많은 분이 도와주셨지만 북한 통과는 미완의 숙제로 남게 됐다. 하지만 지난 1년2개월 동안 국내외에 뿌린 한반도 평화·통일의 씨앗은 싹이 트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북녘·남녘 땅을 종단하는 그 길을 달리겠다고 약속드린다”며 밝게 웃었다.
강씨는 15일 동해에서 하루 쉰 뒤 12월1일까지 북한에서 못다 한 평화·통일을 위한 여정을 계속할 계획이다. 16일 동해에서 출발해 고성까지 170㎞를 달린 뒤 고성에서 비무장지대 인근을 따라 임진각까지 평화·통일 마라톤을 이어간다.
글·사진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마라톤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강명구씨가 15일 귀국 뒤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평화마라톤과 함께하는 사람들’ 회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박수혁 기자
네덜란드서 중국까지 16개국 달려
거의 매일 마라톤 풀코스 뛴 셈
북한 종단 못 이루고 단둥서 귀국 “유라시아 뿌린 통일 씨앗 잘 자랄 것
이번에 못한 남북 종단길 꼭 재도전” 미국 횡단을 마친 직후인 2015년 7월, 그는 마지막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미국 영주권도 포기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 뒤로 2015년 9월 남한 일대를 일주하며 독도 세월호 추모 달리기를 했고, 2016년 네팔 지진피해돕기 마라톤, 2017년 사드 반대 평화마라톤 등 마라톤으로 통일·평화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덕분에 평화마라토너라는 또 다른 별명도 얻었다. 이번 유라시아 횡단 마라톤은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북한 신의주와 평양, 개성,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이 야심찬 ‘평화·통일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후원 단체 ‘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평화마라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하 평마사)’도 꾸려졌다.
강씨가 ‘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평화마라톤과 함께하는 사람들’ 회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박수혁 기자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