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정권”“화폐 위조”“국민 굶겨” 비난
6자회담 불만세력 의도적 속내 드러내
‘체니 건재-라이스 한계’ 역학 분석도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의 신호탄일까? 최근 잇따르는 미국 고위관리들의 강경발언을 놓고 워싱턴 정가에서는 여러 관측이 무성하다. 그러나 워싱턴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는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6자회담 합의에 불만을 품어온 미 강경파의 속내가 위조지폐 사건의 공개를 계기로 자연스레 표출되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는 시각이 많다.
우선 알렉산더 브시바오 주한 미국대사의 ‘북한은 범죄정권’ 발언은 ‘악의 축’이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과는 달리 위폐 문제에 한정된 것으로 봐야 한다. 미 국무부의 한 인사는 개인의견을 전제로 “브시바오 대사는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정권’이라는 뜻으로 한 얘기일텐데, (서울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와 맞물리며) 시기가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고위 외교소식통도 “국무부는 일단 브시바오 대사를 감싸안으려는 분위기이지만, 그의 발언이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점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외교 정보소식지인 ‘넬슨리포트’는 브시바오 발언을 러시아대사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우발적 측면에 무게를 뒀다. 넬슨리포트는 “브시바오 대사는 푸틴 정권에 강경 발언을 해도 문제없이 받아들여지던 러시아에서 활동했다. 러시아는 관리의 말이 언론에 자유롭게 옮겨지지 않던 나라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발언이 조지 부시 행정부의 내심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조지 부시 대통령은 필라델피아 세계문제협회 연설에서 “북한은 우리 화폐를 위조하고, 자기 국민을 굶어죽게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북한에 대한 시각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드러냈다. 물론 부시 대통령의 발언도 처음부터 계획된 건 아니고 속내가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왜 이 시점에서 부시 행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가에 있다. 워싱턴의 한 인사는 “방안으로 불어닥칠 찬바람을 9월19일 베이징 공동성명이란 창호지로 막아놓았는데, 이 창호지가 약해지자 여기저기서 바람이 새 들어오는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 행정부의 역학구도에서 “딕 체니 부통령의 건재,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진보 성향의 스티븐 코스텔로 프로글로벌 대표는 “몇달 전만 해도 대북정책에서 라이스 국무장관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딕 체니 부통령의 건재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보수 성향인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은 “라이스와 체니의 대립을 너무 확대해석해선 안 된다”며,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방북을 막은 것은 (백악관이 아니라) 라이스 국무장관이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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