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북한의 한 세계식량계획(WFP) 지원 공장에서 직원들이 식량을 쌓고 있다. 세계식량계획 제공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지원하기로 한 국내산 쌀 5만t을 ‘받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을 북한 외무성 실무간부가 했다고 전해진다. 정부와 세계식량계획은 애초 먼저 식량지원을 요청한 북한 당국의 공식 방침이 뭔지 확인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4일 “세계식량계획 평양사무소 차원에서 쌀 지원 절차를 북쪽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받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을 북쪽 실무급에서 했다고 한다”며 “세계식량계획 본부(이탈리아 로마) 차원에서 북쪽의 공식 방침을 확인하려고 책임있는 고위 당국자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식량계획 평양사무소의 북쪽 협의 창구는 “외무성 실무급 담당자”이며, ‘안 받겠다’는 이유로 “한·미 연합 군사연습을 거론한 것으로 안다”고 통일부 당국자가 전했다. 김은한 통일부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인도적·동포애적 견지에서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식량 지원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런 소식을 “지난 주말 이전”에 세계식량계획한테서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 ‘19-2 동맹’이 “6·12 조미 공동성명의 기본정신 위반”이라며 북·미 실무협상 개최 여부와 연계를 내비친 1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시점이 겹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평양 현지에서 워낙 여러 얘기가 오가고 발언 주체도 실무급이라 아직 상황을 단정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이번 지원은 남북 양자 차원이 아니라 국제기구와 북쪽이 공식 협상 창구라 받지 않겠다고 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 쌀 지원 논의 경과에 비춰 ‘안 받겠다’는 북쪽 실무급의 발언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북쪽의 뿌리깊은 반감과 두려움을 고려하더라도 다소 뜬금없다.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한 게 논의의 출발이어서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가 지난 2월 식량 사정이 어렵다며 140만t 긴급 원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유엔 기구인 세계식량계획 등에 보낸 게 대표적이다. 이를 토대로 세계식량계획은 국제사회에 대북 지원을 호소했고, 한국 정부가 이에 호응해 국내산 쌀 5만t 지원 방침을 6월19일 공식 발표했다. 북쪽이 국제기구를 중간에 낀 남쪽의 식량지원을 거부한 사례는 지금껏 없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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