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첫 스텔스 전투기 F-35A. 청주/연합뉴스
북한 외무성이 “군사적 위협을 동반한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고 밝혔다.
북한 외무성은 22일 <조선중앙통신>에서 공개한 ‘대변인 담화’(이하 ‘담화’)에서 “미국과 남조선 당국의 가증되는 군사적 적대 행위는 대화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아울러 “물리적 억제력 강화에 더 큰 관심을 돌리는 것이 현실적 방도가 아니겠는가에 대해 심고(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고 있다”며 강경 군사 노선으로의 선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다만 담화는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전략적 방침을 재확인했다.
‘대화 중단’ 선언은 아니다. 협상 노선은 유지하되 ‘지금’ 북-미 실무협상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21일 서울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협의한 뒤 기자들한테 “북한의 카운터파트(대화 상대방)로부터 (소식을) 듣는 대로 실무협상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데 대한 부정적 답신의 성격을 지닌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뒤 ‘2~3주 안 실무협상 재개’에 합의했다고 밝혔으나, 지금껏 미뤄져 왔다. 북쪽은 한국한테는 이미 1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담화는 한국과 미국을 모두 겨냥했다. 우선 한국을 향해선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을 두고 “이런 첨단 살인 장비들의 지속적 반입은 북남 공동선언들과 북남 군사합의서를 정면 부정하는 엄중한 도발”이라 비난했다. 아울러 “‘대화에 도움이 되는 일은 더해가고 방해가 되는 일은 줄이기 위해 노력’하자고 떠들어대고 있는 남조선 당국자들의 위선과 이중적인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사실상 북한을 향해 “대화에 도움이 되는 일은 이행하고 방해가 되는 일은 줄여가는 상호 노력까지 함께해야 대화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한 대목을 겨냥한 것이다.
담화는 “미국이 지역의 군비 경쟁과 대결 분위기를 고취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최대로 각성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중거리순항미사일 시험 발사(18일)와 대만에 F-16V 전투기 66대 판매 승인, 한국·일본의 F-35 반입 등을 사례로 들며 “신냉전을 불러오는 위험한 군사적 움직임들”이라 규정했다. 미국의 F-16V 대만 판매 승인 비판은 ‘중국 변수’를 염두에 포석이다.
담화의 이런 주장에 비춰, 한국의 첨단 무기 반입과 동북아에서 미국의 공격적 군사 행보에 제동을 걸 필요가 절실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대응으로 풀이된다.
‘북한 읽기’에 밝은 전직 고위 관계자는 담화를 두고 “기 싸움”이라며 “북-미 실무협상을 하긴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분야의 한 원로도 “북쪽 외무성이 요즘 상당히 전투적으로 나오는데, 북-미 실무협상에서 자기네가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받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짚었다. 다만 이 원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와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한테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불만의 표시”라며 “상황이 간단치 않아 북쪽이 (북-미 실무협상에) 쉽게 나올 거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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