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 전인 지난 1월20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한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하고 있는 김영철 조선노동당 부위원장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워싱턴/연합뉴스
“미국이 자기 대통령과 우리 국무위원장의 개인적 친분 관계를 내세워 시간끌기를 하며 이 해 말을 무난히 넘겨보려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김영철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이 27일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위원장’ 자격으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의 인내심과 아량을 오판하며 대조선적대시정책에 더욱 발광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담화는 “조미관계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사이에 형성된 친분관계 덕분”이라면서도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미 수뇌(정상)들 사이의 친분관계는 결코 민심을 외면할 수 없으며 조미관계 악화를 방지하거나 보상하기 위한 담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나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벗도 없다는 외교적 명구가 영원한 적은 있어도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격언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담화는 내용 측면에선 김정은 위원장이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밝힌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는 ‘연말 시한’의 재확인이다. 24일 발표된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라는 ‘김계관 외무성 고문 담화’와 표현 방식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대미 신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번 담화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발표 주체가 주목 대상이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 이후 대미 협상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알려진 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 협상의 고빗길에서 ‘김영철’ 이름의 담화를 낸 배경과 의도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담화 발표 직책으로 명기된 아태평화위원장은, 김정은 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김 부원장이 두차례 방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사용한 직책명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