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2일 강원도 고성 감시초소(GP)에서 군 관계자들이 지난 ‘9·19 군사 합의’ 이행에 따라 중화기와 병력 등을 시범 철수한 지피의 내부 공개를 마친 뒤 통문을 잠그고 있다. 북한군 지피와의 거리가 소총 사거리 이내인 580m에 불과한 고성 지피는 군사적·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통일 역사유물로 선정돼 원형은 보존했다. 고성/사진공동취재단
논란을 빚고 있는 유엔군사령관의 ‘군사분계선(MDL) 통과와 비무장지대(DMZ) 출입 허가권’(이하 ‘허가권’)은 한국전쟁 ‘정전협정’(1953년 7월27일)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전협정 1조7항은 군사분계선 통과, 1조8·9항은 비무장지대 출입 허가권을 군사정전위원회에 부여한다. 그리고 ‘고급장교 10인’으로 구성될 군사정전위의 유엔사 쪽 5인 임명 권한은 유엔군사령관한테 있다(1조20항).
정전협정은 허가권의 범위·절차를 따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협정의 목적과 효력 범위를 서언에 명시했다. “한반도에서 적대 행위와 일체 무력 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이며 “정전 조건과 규정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다. 정전협정은 남과 북이 화해협력을 위해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유엔사 설치 근거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4호(1950년 7월7일)는 1항에서 “방어를 위한 한국 지원과 국제 평화와 안보 회복”이 목적이라 명시했다. 유엔사 권한의 전제다.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유엔사에 ‘이양’한 이승만 대통령의 공한(1950년 7월14일)도 “적대 행위가 계속되는 동안”으로 한정했다. 따라서 유엔사 허가권은 ‘적대·무력 행위 방지를 위한 군사적 성질’로 한정되며, ①한국 지원 ②국제 평화 ③안보 회복의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김태헌 검사(서울북부지방검찰청)는 “유엔사 허가권 행사의 대상은 순전히 군사적 성격에 한정되고 비군사적 통과는 허가권 행사의 대상이 아니므로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충분하다고 봄이 합리적 해석”이라고 짚었다.(‘유엔사의 DMZ와 MDL 통과 허가권에 대한 법적 검토’, <통일과 법률> 39호)
하지만 유엔사는 ‘유엔사의 비무장지대 출입 및 통제 유지에 대하여’라는 보도자료(10월23일)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있다”며, 지금까지의 허가권 행사에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0월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나와 “군사분계선 통과 등과 관련해 의견 차이가 있어 협의하고 있다”며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 배경이다.
유엔군사령관은 허가권을 유엔사 군정위 비서처 비서장(미군 대령)한테 위임하고 있다. ‘유엔사 규정 551-4’는 “유엔사군정위 비서장은 유엔군사령관의 대리인”(3-8-a)이며 “유엔사가 통제하는 남측 비무장지대 출입 승인 권한은 유엔사군정위 비서장에게 있다”(3-6-a)고 규정한다.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는 관련 권한이 없다. 기업 사장이 임원을 건너뛰고 총무부장한테 권한을 위임한 것과 다르지 않다. 왜 이랬을까? 유엔군사령관은 미군 대장,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는 한국군 소장, 유엔사 군정위 비서장은 미군 대령이다. ‘한국의 영향력’ 차단 장치로 이해된다.
김태헌 검사는 미군 범죄에 대한 대한민국의 형사재판관할권을 배제하던 소파(주둔군지위협정)의 불평등 조항을 고쳐온 지난한 과정을 환기하며,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이전엔) 유엔사와 협의를 통한 법제화가 예측불가능한 자의적 허가권 행사를 배제하는 합리적 개선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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