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백마를 타고 있다. 김 위원장 오른쪽에 부인 리설주 여사도 보인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에 올라 “자력갱생의 불굴의 정신력”을 호소하며 “자력부강, 자력번영 노선”을 거듭 강조했다. “중대한 문제들을 토의결정”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5차 전원회의를 “12월 하순”에 연다고도 밝혔다. 2018년부터 이태째 이어온 대미 협상 노선에 변화를 주는 ‘중대한 결정’을 예고한 셈이다.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고 “제재와 압박”을 고수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북한이 예고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운 길’을 걷는 데 필요한 내부 정비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조선혁명 발전과 변화된 대내외 정세의 요구에 맞게 중대한 문제들을 토의결정하기 위해” 이달 하순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연다고 밝혔다. 북한이 선택할 ‘새로운 길’의 내용은 이 전원회의와 2020년 신년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겠지만, 최근 김 위원장의 언행에서 그 내용을 대략 유추해볼 수 있다.
이달 들어 김 위원장의 행보는 크게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한 축은 3일 백두산 삼지연군 2단계 공사 준공식과 함경북도 경성군 중평남새(채소)온실농장, 양묘장 조업식 참석인데, 민생분야 ‘성과’를 선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 한 축은 시기를 밝히지 않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방문과 천지 등정으로, 대미 전략을 가다듬는 데 중심을 둔 행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봤다고 4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 가운데 초미의 관심사는 김 위원장의 ‘백두산 구상’이다. 한반도 정세의 흐름에 중대 변수여서다. 우선 중요한 부분은 “자력부강, 자력번영 노선”의 재확인이다. 다른 하나는 “백두의 혁명전통은 조선혁명의 유일무이한 전통”이라며 “빨치산의 피어린 역사”를 환기한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백두산 방문에서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등 군 수뇌부와 함께 “군마를 타시고 백두대지를 힘차게 달리시며 빨치산의 피어린 역사를 뜨겁게 안아보시였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내부적으론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자력갱생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 대외적으론 ‘빨치산 정신’에 기반을 두고 무력시위를 배합한 대미 대응 기조를 내비친 셈이다.
김 위원장이 ‘자력부강, 자력번영 노선’을 “생명으로 틀어쥐고”라고 강조한 대목은, ‘새로운 길’을 걷더라도 지난해 조선노동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사회주의 경제 건설 총력 집중”이라는 국가 발전 전략 노선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시사로 읽힌다. 일부 전문가들은 ‘경제·핵 건설 병진 노선’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지만, 가능성이 낮다. ‘경제·핵 병진’에서 ‘경제 집중’으로 전략 노선을 바꿀 때 내세운 이유가 “국가 핵무력 완성” “세계적 핵강국”인 터라 병진 노선으로 돌아갈 논리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병진 노선 회귀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년)을 흔들어 김 위원장의 통치 기반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최근 김 위원장은 ‘자력부강, 자력번영’을 “불변의 발전 침로”라 강조해왔다. 남북관계와 북핵 관련 외교 경험이 풍부한 원로들은 김 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인공위성 발사”로 동북아의 판을 흔들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김 위원장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카드를 쓸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인공위성 발사 카드 사용은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핵실험 땐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 협력·지원을 받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인공위성 발사’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기반기술이 같아 유엔 제재 대상인데, 북한은 ‘주권국의 우주공간 평화적 이용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고강도 대미 시위인데,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식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며 “위기 지수가 빠르게 높아지는데 반전의 계기가 보이지 않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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