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이웃한 두 마을에서 두개의 깃발이 날리고 있다. 19일 오전 경기 파주 대성동마을에선 태극기가, 북쪽 기정동에선 인공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파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북한 당국이 17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의 ‘담화 폭탄’을 쏟아내고는 18·19일 이틀 연속으로 공식 담화를 내놓지도 추가 행동에 나서지도 않았다. 이미 공언한 “분노한 인민들의 역대 최대 규모 무차별 삐라 살포 투쟁”(<노동신문> 17일치 3면) 등 ‘3차 대적 행동’을 앞둔 폭풍 전야의 ‘고요’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북쪽의 ‘공식 담화와 추가 행동 없는 이틀’이, 정부가 17일 내놓은 서로 다른 성격의 두가지 대북 대응과 무관치 않으리라는 지적도 일부 있다. 북쪽의 ‘숨고르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기대 섞인 분석이다.
정부는 17일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나서 “북쪽의 사리분별을 못하는 언행을 더는 감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는 강경한 공식 논평을 내놨다. 아울러 17일 오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모든 적대행위 중지’를 약속한 4·27 판문점선언을 위반한 대북전단 살포로 촉발된) “남북관계 악화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논평이 북쪽의 군사행동에 맞대응하겠다는 강력한 ‘억제 의지’의 표현이라면, 김연철 장관의 사퇴는 대북전단과 관련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해온 북쪽에 대한 ‘답변’의 성격이 있다. 정부의 대북 대응 기조에 ‘강’과 ‘온’이 배합돼 있는 셈이다.
북한 당국은 청와대 논평과 김 장관의 사퇴에 공식 담화를 포함한 직접적인 반응은 내놓지 않았다. 다만 19일 오후 ‘조선중앙통신사 논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이 분별을 잃었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있어선 안 될 행위’라느니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에 있다’느니 절간의 돌부처도 웃길 추태를 부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남조선 당국자들은 우리가 취하는 모든 조치들이 저지른 죄값에 상응하고 응당한 징벌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논평이 인용한 남쪽의 발언은 윤도한 수석의 것인데, 논평은 비난 대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유의할 대목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19일치 6개 면 가운데 5면에만 각계의 기고문을 앞세운 대남 비난 기사를 실었다. ‘김여정 4일 담화’에 대한 “각계 반향”이 실리기 시작한 6일치 이후 가장 적은 지면 배정이다. “분노한 인민들의 역대 최대 규모 무차별 삐라 살포 투쟁”을 도드라지게 강조한 대목이 특징적이다. 북쪽이 염두에 둔 ‘3차 대적행동’이 대남전단 살포일 가능성이 높다.
“‘흥남비료연합기업소 김영국 부지배인”은 “남조선 당국이 ‘강력한 항의’니 ‘응분의 책임’이니 허튼소리만 늘어놓는데 도적이 매를 드는 격”이라며 “더하지도 덜지도 않고 우리에게 해를 준 만큼 갚아주자는 것이 인민의 의지”라고 <노동신문>에 썼다. “개성시 판문구역의 한 일군”은 “쓸모없게 돼버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한 채가 사라졌다고 분노한 민심이 식어졌겠는가, 연속적 대적행동 조치들로 강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이 민심”이라고 말했다.
“평양출판인쇄대학 황명도 부학장”과 “천성청년탄광 강호영청년돌격대의 제대군인들” 등은 “정의의 삐라폭탄을 퍼붓겠다고 윽윽(기세를 올려 힘을 쓰며) 벼르고 있다”거나 “나도 가겠소, 한바탕 삐라를 뿌리면 속이 풀리겠는지”라고 <노동신문>에 밝혔다. <노동신문>은 “핵폭탄보다 무서운 것이 우리 인민의 증오심, 복수의 의지”라며 “지금 우리 인민들 특히 청년학생들은 전선지대로 달려가 최대 규모의 무차별 삐라 살포 투쟁에 진입할 열의에 넘쳐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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