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원 ‘동북변강 연구총서’ 2차분 4권 펴내
“말갈족이 발해 건국” “고구려는 지방정권” 주장
“말갈족이 발해 건국” “고구려는 지방정권” 주장
중국이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동북공정’ 연구서를 최근 잇달아 펴내고 있다. 동북공정을 주관해온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역사지리연구중심은 최근 <고구려 민족과 국가의 형성 및 변천> <발해국사> <고대 중-조 주종관계와 중-조 국경 역사 연구> <한·당나라 주변 속국체제 연구> 등 이른바 ‘동북변강 연구총서’ 2차분 4권을 펴냈다.
역사 연구서 형식으로 출간된 이 책들은 중국 국무원 산하 최대·최고의 두뇌집단인 중국사회과학원의 통제 아래 ‘중국의 동북지역(만주)에 존재했던 역대 왕조들은 모두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시각을 전제로 서술하고 있어, 한국 연구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웨이궈중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이 쓴 <발해국사>는 연구 목적에 대해 “발해사와 관련된 남·북한 등 외국 학자들의 잘못된 시각을 배척하고 정확한 관점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웨이 연구원은 이 책 서문에서 “한국은 발해사 연구에 대량의 연구인력과 물량, 재원을 투입해 대량의 논문을 양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발해를 한국사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며 “그러나 한국의 발해 연구는 정치적 제약을 받고 있어, 연구에 민족 감정이 개입되는 등 학술적 연구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평하고 있다.
웨이 연구원은 이 책에서 “발해 건국의 주도세력은 고구려인이 아니라 말갈족”이라며 “고구려인은 발해 건국에서 기껏해야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지위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은이는 또 “발해국이 완전한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가 아니라 당나라의 통치범위 안에 든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며 “발해에서 말갈족의 인구는 56만명으로, 중국 문화에 동화돼 상당히 강대한 잠재적 정치세력을 형성했다”고 주장해, 발해사를 한국사에서 분리해 내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 ‘동북변강 연구총서’ 2차분에 포함된 양쥔 지린대학 교수의 <고구려 민족과 국가의 형성 및 변천>은 고구려가 수·당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었으며, 수·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이민족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수·당 왕조의 ‘통일전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또 고구려가 멸망한 뒤 지배층과 유민이 당나라에 유입돼 동화됐다고 주장했다.
<고대 중-조 주종관계와 중-조 국경 역사 연구> 또한 고구려를 비롯한 동북 지방의 역대 정권이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시각을 전제로 서술하고 있으며, <한·당나라 주변 속국체제 연구>는 중국의 한·당나라 때 중국 주변나라들이 모두 중국과 속국 또는 번국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연구들은 근대 역사학의 과학적 방법론이 아니라 중국 봉건시기 ‘황제-제후국’의 관계를 적용해, 주변 국가들의 역사를 모두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의 역사’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 목적에 오염된 국가 규모의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한국사)는 “지난 2004년 동북공정에 의한 중국의 대규모 한국사 왜곡이 문제가 됐을 때 이를 학술적 토론에 맡기기로 합의했으나, 중국쪽이 학술적 토론을 꺼려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당시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연구실장)이던 최 교수는 “2004년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중 정부의 합의에 따라 세 차례에 걸쳐 두 나라를 오가며 고구려사 문제 등에 관한 학자들 사이의 학술 토론이 벌어졌으나, 역사학자들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 쪽과 달리 역사·지리·국경문제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중국 쪽이 역사 귀속 논쟁에서 밀리자 학술 토론을 계속 진행하는 걸 꺼렸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중국이 동북공정에 따른 왜곡된 시각의 역사 출판물을 내놓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연구’ 내용이 머잖아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 실리는 일”이라며 한국 정부의 강력한 대응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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