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에 실망했다. 대화는 하겠지만, 재협상은 없다.’
한국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의 관보 게재(고시) 유보와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출 중단 요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미 백악관, 국무부, 주한 미 대사관, 무역대표부가 내놓은 입장은 ‘오차’없이 정확히 사전에 조율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미 정부는 주한 미 대사관과 무역대표부를 통해 ‘실망’이란 단어를 쓰면서, 한국 정부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둘러싼 미국 쪽 이해를 최전선에서 대변하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 대사는 “우리가 실망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역대표부도 합의 이행이 지연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했다. 미 정부가 하고 싶은 말을 미 대사나 무역대표부가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미국 쪽 최고 의사결정 과정의 정점에 있는 백악관의 토니 프래토 대변인은 3일 한국 쪽 요구에 “우리는 한국 쪽의 계획을 이해하려고 한국 정부와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 언뜻 보면 한국 정부와의 ‘소통’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통은 ‘재협상’ 등 한국 정부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소통이 아니다. 백악관의 지침을 내려받는 국무부의 톰 케이시 부대변인은 미국 정부가 말하는 소통의 한계와 성격을 분명히 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한미 양국 정상이 합의한 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협의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협의 즉, 소통은 협정 이행을 위한 소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를 하겠다’ ‘협력하겠다’는 등의 표현은 곤란한 처지에 놓인 한국 정부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나온 외교적 수사의 성격이 짙다.
사실 미국이 예의를 갖췄는지 아닌지와 상관 없이 ‘재협상 불가’라는 자신들의 뜻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본국 정부의 훈령을 받았다”며 “재협상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국무부가 좀 더 완곡하게 “우리는 계속해서 이 협정이 추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고, 백악관은 에둘러 “우리의 우려(재협상)가 해소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미국 산업계 및 한국 쪽과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표현 강도에서 차이를 보였을 뿐, 재협상 불가라는 미 정부의 의지와 원칙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 정부의 이런 태도를 볼 때, 한국 정부는 사전 조율 없이 미국 쪽에 쇠고기 협정 내용의 변경을 요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정부의 기대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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