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장관급 거물들이 온다. 21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의 방한을 시작으로 미국 쪽에선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존 케리 국무장관 등이 다음달 방한한다.
서울을 무대로 미-중 사이 벌어진 차관보급 외교전의 여진이 채 가라앉기도 전이다. 사드(THAAD·종말단계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 문제를 두고 대립하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 외교가 다시금 가파른 시험대에 서게 됐다. 이들의 방한은 최근 일어난 ‘한반도 사드 배치 논란’과 상관없이 예정된 일정이긴 하지만, 이들이 모두 미국과 중국에서 사드와 관련한 주요 책임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또다시 사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에도 중국이 선공이다.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는 왕이 외교부장이 오전에 별도로 진행되는 한-중 양자회담에서 사드와 관련해 어떤 언급을 내놓을지가 관심이다. 이미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지난 16일 한-중 차관보급 협의에서 “중국의 우려를 중시해줄 것을 희망한다”며 ‘사드의 한국 배치’에 직설적 반대 의사를 공개 표명한 바 있다.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는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7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미사일방어 체계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청한 이래, 이를 사드 문제를 다루는 (중국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이후 모든 단계의 외교 경로를 통해 일관되게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왕 부장의 의사 표출 방식이나 발언 수위가 류 부장조리처럼 직설적, 고강도일지는 미지수다. 일제침략 경험을 공유하는 한국·중국이 일본과 각을 세워온 한-중-일 3국 회의 성격상 이 자리에서 한국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이견을 드러내는 모양새를 보이려 하진 않을 가능성도 있다. 류젠차오 부장조리의 직설 토로 뒤 한국 국방부가 ‘주권에 간섭하지 말라’며 날선 반박에 나서는 등 한국 쪽 반발이 거셌던 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만일 왕이 부장이 한국의 반발 가능성에 아랑곳없이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을 경우, 한국 외교로선 류 부장조리 때와는 또다른 차원의 부담을 안게 된다. 중국이 사드 문제를 다른 한-중 관계보다 더 핵심적 국익이 걸린 사안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외교 책임자가 직접 분명히 표출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쪽 장관급 고위 인사들의 방한도 줄줄이 대기중이다. 이달 말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 방한을 시작으로,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도 각각 4월 서울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의 방문 목적이 ‘사드’는 아니지만, 이들은 모두 사드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루는 고위 당국자들이고, 하지만 사드 배치가 한-미를 넘어 한-미-중 3국 간의 초대형 안보 이슈로 급부상한 상황이라 사드 논의를 애써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주무 장관인 카터 국방장관이다. 정부 관계자는 “카터 장관이 4월 초쯤 신임인사차 방한하는 쪽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터 장관은 1차 북핵 위기 때인 1993~94년 북한 핵시설과 ‘대포동 2호’ 미사일기지 선제 타격론을 주장했던 대북 ‘매파’로 꼽힌다. 지난 2월 초 열린 인준 청문회에서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맞서 미 본토 방어에 필요한 미사일 방어 체계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카터 장관을 비롯한 미 장관급 인사들이 다시 한번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를 공개 반박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한국의 외교적 선택지는 한층 협소해질 가능성이 높다.
손원제 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