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을 방문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왼쪽)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창밖에서 한 북한군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한국과 중국, 일본을 순방 중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잇따라 새로운 대북정책 노선을 거론하고 나섰다. 특히 틸러슨 장관은 16일 일본에서 ‘새로운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한 데 그쳤으나, 17일 서울에서는 “분명히 말하지만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은 이제 끝났다”고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단절된 대북정책을 모색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틸러슨 장관은 새로운 대북정책이 필요한 근거를 기존 대북정책의 실패에서 찾았다. 그는 이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해 우리는 지난 20년간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미국은 1995년 이후 13억달러를 북한에 제공했다. 북한은 그에 대한 답으로 핵무기를 개발했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미국과 우리 동맹국을 위협했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정책이 잘못됐으니 이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 대북 접근법’의 내용과 관련해선,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아직 구체적 방안이 무르익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날 일본에서도 이번 한·중·일 순방 목적에는 ‘새로운 대북 접근법’에 대한 견해를 교환하기 위한 것도 포함됐다고 밝힌 바 있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새로운 대북정책의 검토 대상으로 “외교·안보·경제적인 모든 형태의 조처”, “모든 옵션” 등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등 큰 틀의 윤곽을 제시했다. 이는 전날 일본에선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틸러슨 장관은 더 구체적으로는 우선 대북 대화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들어 배제했다. 그는 이날 중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요구한 것에 대해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시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부정했다. 대화를 위해선 “조건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화를 위한 조건 변화에는 북한의 핵무기 포기와 대량파괴무기의 포기(또는 포기 의지)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는 16일 <시엔엔>(CNN)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미국)는 6자회담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6자회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에 대해서도 “모든 옵션을 다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물론 우리는 군사적 갈등까지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위협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 방문 때에 이어 이날 한국에서도 “북한은 미국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해, 군사적 수단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선을 그었다.
틸러슨 장관은 대신 이날 중국 역할론, 한·미·일 협력 강화, 강력한 대북 제재 등의 유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실제 “유엔 안보리 제재 조처를 최고 수준으로 취했다고 믿지 않는다”며 대북 제재의 수위를 더 높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울러 중국이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를 행사해 더욱 압박할 것을 기대한다며 ‘중국 역할론’에 대한 기존의 기대를 다시 언급했다.
이는 강력한 대북 제재나 중국 역할론 등 기존의 대북정책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모든 옵션을 올려놓고 검토하고 있으나 전략적 인내는 상황이 만들어낸 산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당장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현재로선 중국을 대북 제재의 체제 속에 편입하기 위해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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