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일본해 병기를 주장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홍보 자료 <동해>(2014).
‘동해 표기’와 관련해 한-일 간 초미의 관심사였던 국제수로기구(IHO)의 수역 표기 기준이 지금까지 써오던 ‘동중국해’ 같은 바다 명 대신 숫자로 구성된 고유 식별번호로 바뀌게 된다.
국제수로기구는 11월 16~18일 화상 총회를 열어 그동안 사용해온 수역의 이름을 버리고 ‘숫자로 된 체계’(a system of unique numerical identifier) 도입을 제안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안이 시행되면, 국제수로기구는 앞으로 특정 수역을 지칭할 때 ‘바다의 이름’이 아닌 숫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고유 식별번호를 사용하게 된다.
국제수로기구의 이번 총회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 결정이 20여년간 이어진 한국 정부의 동해 병기 운동의 중요 ‘변곡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1992년 국제적으로 일본해로 굳어져가는 동해 수역의 표기를 ‘동해·일본해’ 병기로 바꾸는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일 공방의 무대가 된 것은 국제수로기구였다. 이 기구가 일제강점기인 1929년 만든 해도 제작 지침서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에서 동해 수역을 일본해(Japan Sea)로 단독 표기한 이래 2판(1937년), 3판(1953년)에도 반복됐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1997년부터 4판 개정 땐 일본해 단독 표기를 반드시 동해 병기로 바꿔야 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외교력을 집중해왔다. 현재 전 세계 종이 지도에선 약 40% 정도가 동해를 병기하고 있다.
한-일 간 대립으로 4차 개정판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국제수로기구는 2017년 4월 동해 표기와 관련된 3대 당사국인 남·북·일 3자와 미국·영국이 모인 비공식 협의를 통해 결론을 내라고 결정했다. 그에 따라 2019년 4월과 10월 두 차례 비공식 대화를 진행했지만 일본은 끝내 병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비공식 회의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맞춰 S-23을 개정하지 않고 해양과 바다의 경계 정보를 담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S-130이란 새 표준을 도입하기로 했다. 새 표준에 따라 각 수역에 식별변호가 어떻게 부여될지는 앞으로 국제수로기구가 기준을 만들게 된다.
이번 결정과 관련해선, 동해 수역을 일본해로 표기한 S-23을 국제사회의 지명 표준으로 삼을 수 없다는 한국의 입장을 반영하면서, 옛 안을 남겨둬야 한다는 일본의 입장을 일부 수용한 창의적인 방안이란 평가가 나온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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