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르다. 외교에서 쓰는 용어들은 속담처럼 비슷한 말이더라도 작은 표현의 차이로 의미가 갈린다.
10일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방문·주요20개국(G20)정상회의 4박6일 일정 동안에도 비슷비슷하지만 의미는 다른 ‘외교 용어’들이 수시로 쏟아졌다. 문 대통령은 ‘회의’와 ‘회담’을 오갔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와 ‘포괄적 동반자’, ‘미래지향적인 협력 동반자 관계’ 등 다양한 관계의 각국 정상들을 만났다. ‘공동언론발표’를 했다가 ‘공동성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지난 4박6일 일정을 돌아보며 ‘어 다르고 아 다른’ 외교 용어를 짚어본다.
‘전략’의 유무
수교를 맺은 두 국가는 ‘관계’를 정의한다. 정치·안보·경제 분야의 우호관계에 따라 다양한 수식어를 붙이는데 한국의 경우 미국은 ‘포괄적 전략적 동맹관계’고, 중국·러시아·베트남 등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멕시코·알제리·인도 등)와 ‘포괄적 동반자’ (프랑스) 등의 관계도 있다. 하지만 국제외교에서 이를 구분하는 체계적인 기준이나, 명확한 규정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고, 나머지 다른 나라들은 모두 ‘동반자’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중국학)는 “교과서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 두 나라가 현실적 필요에 따라 ‘이러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천명하는 수사에 가깝다”고 말했다.
보통은 ‘전략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관계의 경우 두 나라가 정치·외교·경제 분야 등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은 ‘포괄적 전략적 동맹관계’로 가장 중요한 국가이고, 그 다음순위가 ‘전략적 관계’를 맺은 나라들이다. 강 교수는 “‘전략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군사·안보적 협력관계의 필요성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고, 국제사회 다자관계 속에서 두나라가 협력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괄적’이라는 수식어는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사이에 붙이는 말이다.
당연히 이러한 수식어는 양국간의 관계에 따라 변한다. 한-중 양국은 1992년 수교 이래 ‘우호협력관계’→‘협력 동반자 관계’(1998년)→‘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2003년)→‘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2005년)’로 관계의 수준을 높여왔다. 반면 한·일 관계는 현실적으로 ‘전략적 관계’에 가깝지만, 과거사 문제로 인한 양국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전략적’ 대신 ‘미래지향적’이란 표현만 쓰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7일 오후(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 메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명>선언>언론발표
문 대통령은 지(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13차례 국가정상급 인사들과 회담을 가졌다. 회의는 3개 국가 이상이 논의할때 붙이는 표현이고, 회담은 두 나라 정상만 만날 경우 붙이는 용어다. 보통 회의나 회담을 마치면 논의 내용을 알리기 위해 ‘공동성명(Joint Statement)’, ‘공동선언(Joint declaration)’을 채택한다. 또는 ‘공동언론발표(Joint Press Statement)’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찬 회담을 갖고 공동언론발표를 했고, 지20 정상회의에는 공동성명에 참여했다. 외교부 동북아국장을 지낸 조세영 동서대 특임 교수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고 절대적인 기준이 없지만, 공동성명의 위상이 제일 세고 그 다음이 ‘공동선언’, 가장 위상이 낮은 것이 ‘공동언론발표’ 다”고 설명했다. 모두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공동성명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효력을 갖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공동언론발표의 경우는 각 정상이 논의한 내용을 말그대로 언론에 브리핑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연방총리실 청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리트리트는 휴식이 아니다
이번 지(G)20 회의에선 공식 세션과 별도로 ‘리트리트(비공식 자유토론)’가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요청으로 리트리트 결과를 발표하는 메르켈 총리가 북핵 문제를 언급했다”고 밝혔다. ‘휴식’을 뜻하는 ‘리트리트’는 각국 정상들이 격의 없는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국제 회의에서 마련하는 프로그램이다. 조 교수는 “공식 세션은 각국이 한정된 발언 시간에 맞춰 준비된 각본을 읽는 경우가 많다. 힘들게 모였는데 준비된 내용만 읽고 가지 말고 휴양지에 온 것처럼 긴장을 풀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진행하는게 리트리트”라고 설명했다. 리트리트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은 외교부 장관과 통역 등 최소한의 인원만 대동한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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