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에 설치된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주택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촉진’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제기 적극 지원’을 내걸었다. 배지현 기자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사흘 앞두고 여야가 모두 서울 민심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서울은 전체 유권자(4419만명)의 20%에 이르는 833만명의 유권자가 포진한 명실상부한 ‘최대 승부처’다. 1997년 이후 역대 대선에서 2012년 대선을 제외하고는 서울에서 이긴 후보가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에 <한겨레>는 지난 3일 서울 시내를 돌며 이번 대선의 핵심 의제인 부동산 민심과 자영업자, 2030세대 등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가장 큰 게 부동산 망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서울 명동 지하상가 안경점을 운영하는 송아무개(50)씨는 지난 3일 대통령 선거 얘기가 나오자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명동 거리는 3~4군데 가게 건너 한 곳만 겨우 문을 연 정도였을 뿐 아니라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하지만 송씨가 코로나19보다 더욱 열을 올린 것은 부동산이었다. 원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였다고 밝힌 송씨는 “이번엔 못 찍는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을 올려놔서 우리는, 앞으로 애들은 어떻게 사느냐”며 “표 달라고 떼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 도봉구 창동역 1번 출구에 걸린 대선 후보들의 현수막. 배지현 기자
여야 모두 이번 선거의 주요 변수로 ‘부동산’을 꼽을 만큼 이날 <한겨레>가 만난 시민들은 부동산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해 6월 문재인 정부 4년간 서울 주요 아파트값이 93% 올랐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을 만큼, 집값은 급등했다. 특히 재건축 대상 아파트가 밀집한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은 현 정부에서 부동산이 폭등한 주요 지역 중 하나다. 노·도·강은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으로 분류되던 곳이었지만, 부동산 문제의 여파로 지난해 치뤄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아닌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쪽으로 모두 돌아섰다. 여야 후보는 이 지역을 찾아 대대적인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을 약속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월 노원구 재건축 추진 아파트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용적률 500% 상향 가능한 ‘4종 주거지역’ 신설 등을 포함한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6대 정책’을 발표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또한 지난해 12월 미아 4-1 주택 재건축 정비구역을 방문해 “주택 시장에 공급 물량이 들어온다는 시그널을 주면 가격 상승 압박을 줄여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다”며 2년 내 착공을 약속했다.
부동산 직격탄을 맞은 노·도·강의 민심은 여전히 민주당에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서울 강북구 숭인시장에서 46년째 신발 장사를 하는 부부 홍경만(70)씨와 박태숙(67)씨는 ‘부동산’ 얘기에 고개부터 저었다. “부동산 정책은 완전히 잘못됐어. 그동안 집값이 너무 올랐으니까 요즘 조금씩 떨어지는 거지, 정부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야” 홍씨는 “우리는 늙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우리 자식들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서울 강북구 미아사거리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아무개(48)씨는 “민주당 정부는 방역정책에 일관성도 없고 부동산 정책까지 실패했다”면서도 “그렇다고 윤석열을 뽑을 수도 없고 누굴 뽑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정치적 기반인 서울 노원구 상계동. 배지현 기자
반면 전세대출을 받아 강북구에 거주하는 김준영(28)씨는 “집값을 잡아줄 수 있는 후보를 찍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집값 하락세를 보면서 이재명 후보로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 창동역 근처를 산책하던 50대 김아무개씨는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은 문제”라고 하면서도 “윤 후보는 몰라도 너무 몰라서 대통령을 하면 안 된다. 이재명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손실보상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30년 넘게 터를 잡고 있다는 김아무개(59)씨는 “상인들 절반 이상은 일주일에 티셔츠 한장도 못 판다. 전부 다 장사가 안되니까 만 원짜리 티셔츠 한장 팔면 같이 박수쳐 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이 후보의 ‘전국민 지역화폐’ 정책 때문에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김씨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카드로 주고, 지역 정해서 쓰게 했을 때 그때 좀 시장에 사람이 늘어났다”며 “코로나 초기에 신천지 잡으러 직접 가평에 가는 등 행정력이 일사천리”라고 말했다. 반면 상인 신아무개(64)씨는 “하루에 매상을 100만~200만원씩 올리던 사람들이 5만원도 못버는 상황이다. 정부가 300만원 준다는데 아무 영향도 없다”며 “정부의 방역정책이 문제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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