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산하면 애국이고 다산까지 하면 위인”이라는 칼럼을 쓴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인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성범죄자 취업제한 직종에 의료인을 포함한 법률을 비웃은 의료단체에 동조하고 여성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논란이 된 여성을 에둘러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칼럼을 여럿 작성한 것으로 12일 드러났다.
정 후보자는 경북대학교 병원 외과 교수이던 2009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5년 동안 대구의 지역일간지 <매일신문>에 ‘의창’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우선 2013년 11월18일치에 게재한
‘3M(미터) 청진기’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이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거론했다. 당시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서 성범죄를 저질러 형이나 치료감호가 확정된 사람은 아동·청소년 관련 취업과 시설 운영을 제한했는데, 취업·개업 제한 직종에 ‘의료인’도 포함됐다. 전의총은 이에 반발하면서 “한국형 청진기 공구(공동구매) 들어갑니다. 의사는 3m 떨어져 있고, 여자 환자 분은 의사 지시에 따라 청진기를 직접 본인의 몸에 대시면 됩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아청법을 희화화했다. 정 후보자는 칼럼에서 전의총의 글을 고스란히 옮긴 뒤 “애당초 여자 환자의 가슴에 바로 귀를 대기가 민망해서 만들어진 청진기가 이젠 더욱 길어지게 됐다”며 “어쩌면 앞으로는 여성의 손목에 실을 매어 옆방에서 진맥을 했던 선조들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썼다. 전의총의 글에 동조하며 희화화에 논리를 더한 것이다.
정 후보자는 2011년 3월28일치에 쓴
‘신모계사회’라는 칼럼에서는 “최근에 한 시장조사 업체에서 직장인 5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가 여성 중심으로 직장이나 가정생활이 이뤄지는 이른바 ‘신(新)모계사회’가 도래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며 여성의 사회진출 등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는 사회 분위기를 거론했다. 정 후보자는 이후 남녀 수명 차이를 언급하면서 원래 남성들의 평균 수명이 더 짧은 건 남성이 사회생활로 인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인데,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이미 1천만 명을 넘어”서는 등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는 세태에 따라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스트레스를 여자들에게 떠넘긴, 팔자 좋은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여자들을 앞지를지도 모를 일”이라고 비꼬았다.
정 후보자는 당시 여성들의 발언이 남성 커뮤니티 등에서 논란이 될 때마다 칼럼에 이를 꼬박꼬박 거론하며 비꼬는 글을 즐겨 쓰기도 했다. 한 강사가 인터넷 강의에서 군대와 관련해 다소 무리한 발언을 한 사실이 2010년 7월께 뒤늦게 논란이 되자, 정 후보자는 같은해 8월16일치에 쓴
‘백년대계’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나도 3년 3개월을 전투부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수시로 사격훈련과 유격훈련을 받았으니 그렇다면 나 역시 살인기술자라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2009년에는 한 대학생이 남성의 신체를 두고 한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민감한 신상정보까지 모두 털리는 등 비판에 시달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정 후보자는 2009년 11월23일치에 쓴
‘음식과 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해당 사건을 거론하며 “아끼고 가려서 하기가 그렇게 어려우니 차라리 말을 안 하면 화(禍)도 없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앞서 정 후보자는
2012년 10월29일치 ‘애국의 길’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요즘 와서 보면 지금만큼 애국하기 쉬운 시절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때’를 만난 것인데 바로 ‘결혼’과 ‘출산’이 그 방법”이라며 “결혼만으로도 당장 예비 애국자가 될 수가 있고, 출산까지 연결된다면 비로소 애국자의 반열에 오른다. 만일 셋 이상 다산까지 한다면 ‘위인’으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말해 비판을 샀다. 정 후보자는 이 글에서 “지난달에는 미국 메릴랜드대 연구팀이 폐암 환자의 경우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독신인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산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며 “암 치료의 특효약은 결혼이라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아울러 “심리학적으로 ‘해 본 것에 대한 후회’가 ‘못 해 본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훨씬 낫다고 하지 않은가”라며 “이제 온 국민이 중매쟁이로 나서야 할 때다. 그것이 바로 애국”이라고 주장했다.
정 후보자는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칼럼 논란에 대해 “제가 외과의사로서 한 10년 전에 지역 일간지에 기고했던 글인데, 의료 문제에 있어서 그 시점에서 일어난 가장 핫이슈들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하는 성격의 글이었다”며 “그렇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혹시라도 1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에서 만일에라도 마음이 불편하시고 상처 받으신 분들 있다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정 후보자의 글은 여성의 역할을 출산과 육아에 한정하면서 그 외의 사회활동을 비하한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성범죄에 있어서도 가해자의 사정을 먼저 염려하면서 법 자체를 희화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며 “어찌보면 여성혐오 선동으로 남녀를 갈라치기해서 표를 얻은 정부에 딱 어울리는 인사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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