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힘의힘 당사에서 전당대회 불출마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장고 끝에 25일 결국 당대표 도전을 포기하면서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당내 견고한 지지 기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과 당내 친윤석열계의 집단공격을 이기지 못한 채 끝내 백기투항하는 모습을 보이며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겨레>의 취재를 종합하면, 나 전 의원은 이날 예정된 기자회견(오전 11시)을 2시간 앞두고서야 측근들과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 지도부에게 전당대회 불출마 결심을 밝혔다고 한다. 전날 참모들과의 4시간가량 회의에서도 출마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다가, 가족들까지 출마를 만류하자 밤새 불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다.
사실상 당대표 출마 행보를 걷던 나 전 의원이 불출마로 돌아선 건 ‘친윤계 대 반윤계’ 대결 구도로 흘러가는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반윤’이란 낙인이 선명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 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제 출마가 분열의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고, 극도로 혼란스럽고 국민들께 정말 안 좋은 모습으로 비춰질 부분이 있기에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솔로몬 재판의 진짜 엄마 심정으로 그만두기로 했다”고 불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당의 화합과 단결을 내세웠지만,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당권 주자로 나설 경우 승산이 크지 않다는 계산에다, ‘개혁 보수’로 자리매김한 유승민 전 의원과는 달리 정치적 노선이 확실치 않아 반윤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장기적으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비쳐졌다. 특히 최근 윤 대통령과 여러 차례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의힘 대표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3위까지 떨어지는 등 ‘최강점’인 지지율마저 하락세로 돌아선 것도 불출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 안에선 불출마 선언으로 나 전 의원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윤심’(윤 대통령의 마음)을 잃은데다, 출마 여부를 두고 내내 머뭇거리는 모습을 노출하며 ‘결단력 없는 정치인’이란 이미지까지 쌓인 탓이다. 실제로 나 전 의원은 지난 13일 저출산위 부위원장직 서면 사직서를 제출하고 ‘당내 민주주의’ ‘진박 감별사’ 등의 강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자신의 출마를 막으려는 친윤계의 압박에 맞서는 모양새를 연출하면서도, 곧바로 출마를 선언해야 한다는 참모들의 조언에도 줄곧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해왔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순방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가, 결국 해임 결정을 둘러싼 논란으로 ‘윤 대통령에게 누가 됐다’며 사과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런 모습은, 사실상 윤심이 달라지기만 기다린 것으로 비쳐졌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와 관련 “나 전 의원 정도면 어려움이 있을 때 과감하게 돌파하고 나가야 지도자감으로 더 클 수 있다”면서 “주저앉아 버렸으니 국민들이 실망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친윤석열계 초선 의원도 “자기 정치 다 해놓고 지금 와서 불출마가 무슨 의미냐. 정치적으로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현재로선 (나 전 의원의) 내년 총선 공천도 낙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의원을 세게 밀어주면 앞으로 입지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여지를 열어뒀다. 나 전 의원이 불출마 선언 이후 친윤계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당내 입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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