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현지시각)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5박7일에 걸친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하이라이트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미국 팝 아티스트 돈 매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장면이 아닐까 싶다.
국빈 만찬에 참석한 내빈들이 노래를 청하자, 윤 대통령은 “(가사가) 기억이 잘 날지 모르겠다”며 피아노 반주에 맞춰 1분여 동안 노래실력을 뽐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만찬 참석자 200여명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열광했다. 윤 대통령은 편안한 분위기를 주도하며 한-미 동맹을 과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을 “재능이 많은 남자”라고 추어올렸다.
과연 이런 ‘재능’을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걸까. 윤 대통령은 귀국 다음날인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참모들에게 순방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이 “청년과 미래세대에 기회의 플랫폼이 되도록 후속 조처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 대표들을 만나 ‘안보동맹’을 공유할 것이란 소식은 이번에도 들리지 않는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야당과의 만남을 따로 준비하고 있지 않는 거로 안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지도부와는 방미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를 곧 마련할 것이란 얘기가 대통령실 안팎에서 나온다.
윤 대통령은 1년 전 당선 뒤 “국민 통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야당 대표를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나지 않았다. 대신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4월27일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이라고 국제무대에서도 야당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국제정치의 파트너가 미국이라면, 국내정치의 파트너는 야당이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서울에서 훌륭한 한식으로 보답하고 싶다”며 연일 러브콜을 보내면서도 야당에는 단 한 차례도 대통령실 혹은 관저로 초청하는 초대장을 보내지 않고 있다.
즉석에서 상대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 유대감을 쌓고, “방탄소년단(BTS)이 저보다 백악관을 먼저 왔지만, 의회는 제가 먼저 왔다”는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푸는 윤 대통령의 ‘재능’이 왜 유독 국내에서는, 야당에 대해서는 발휘되지 않는 것일까.
“그때 난 내가 노래할 기회가 있었으면 사람들을 춤추게 할 수 있었을 것이란 걸 알았죠.”
윤 대통령이 부른 '아메리칸 파이' 가사 중 일부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