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손학규 전 경기지사,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김한길 중도개혁통합신당 대표, 박상천 민주당 대표의 모습.(오른쪽부터)
동교동 다시 ‘문전성시’
“사생결단 해서라도 범여 통합 이뤄라
한나라는 상대없이 혼자 주먹 휘둘러”
높아가는 대선 수위 대선 판도 변수로 오랫동안 우리 정치에선 금기시해 왔던 개념이다. 대부분 재임 기간 중 이미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기에, 현실적으로 과거의 대통령들이 퇴임 이후 정치에 개입할 여지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올해 대선은 이례적이다. 선거의 해인데도 현직 대통령은 정치적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요즘 부쩍 정치적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디제이(DJ)의 동교동 자택은 이른바 범여권 대선 주자들로 문전성시다. 정계개편 방향을 놓고 전·현직 대통령이 때론 대립하고 때론 손을 잡는 양상까지 나타난다. 정치판을 떠났지만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갖고 발언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훈수 정치’를 들여다본다. ‘DJ의 힘’ 대선 변수로 “(범여권) 통합 문제가 지지부진해 답답하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은 이미 지방을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쪽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만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면 누군가 한 사람이 나타나 정국을 리드하거나, 사생결단을 해서라도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단일 정당을 구성해야 한다. 안되면 연합체라도 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행동해야 한다.” 이른바 ‘범여권’의 핵심 정치인 발언처럼 느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나서 한 얘기다. 김 전 대통령은 “은퇴한 대통령으로서 말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좋지 않지만 …”이란 전제를 달면서도, 최근 정국 특히 범여권 상황에 대해 직설적으로 속마음을 토해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범여권 통합과 대선 승리에의 의지가 확연히 읽혀진다. 정치적 파장은 격렬하다. 한나라당은 당장 강하게 반발했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개입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요즘 정치권에선 ‘동교동’이란 단어가 다시 자주 등장한다.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은 범여권 대선 주자들로 문전성시다. 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수요’와, 이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동교동의 ‘공급’이 맞아 떨어지면서, 김 전 대통령은 정치권의 또다른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잦아지는 대선 주자들의 발길=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독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김혁규 의원,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잇달아 만났다. 28일엔 김한길 중도개혁 통합신당 대표를 만난다. 김근태·한명숙·이해찬 의원과 박상천 민주당 대표의 면담 요청도 접수돼 있다. 다음달 14일 열리는 6·15 남북 정상회담 7돌 기념행사엔 각 당 대표와 대선 주자들을 대거 초청했다. 현실 정치에 대한 그의 발언 수위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에겐 “(한나라당의 독주는) 쏠림 현상도 아니다. 상대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라며 “잘못하다간 (국민이) 체념하고 외면할 우려가 있다. 그러면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고까지 말했다. 정치권에선 5월 말을 기점으로 김 전 대통령이 대선과 관련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동교동계 출신의 전직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최근 국내정치 문제에 대한 보고를 굉장히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창구는 박지원 비서실장이다. 박 실장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 쪽 사람들까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최재천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때가 됐다는 판단에 따라 공개 발언을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훈수 정치’ 비판=전직 대통령의 현실정치 개입은 위험을 수반한다. 여론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 특정 대선 주자에 기운 듯한 기색이 나타나면 경쟁 주자들의 격한 반발을 부르며 체면을 구기게 된다. 최근 ‘디제이-손학규 연대설’이 흘러나오자 동교동 쪽이 이를 강력히 부인한 건 이런 점을 우려한 때문이다. 동교동계 출신의 설훈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누구 쪽으로 기울었다는 얘기는 순전히 낭설”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잇단 정치적 발언에 대해, 동교동 쪽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이라는 맥락에서 봐달라고 요청한다. “내가 한반도 평화·번영정책의 씨앗을 뿌렸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가꾸고 있다. 한번 더 좋은 대통령을 만들어서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동교동 비서 출신인 배기선 의원이 김 전 대통령한테서 직접 들었다며 전한 얘기다. 설훈 전 의원도 “김 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기조를 이어갈 세력과 인물의 집권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과 전략적 제휴인가?=김 전 대통령은 지역문제에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정동영 전 의장에게 “전라도 사람들은 나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줬는데, 지역감정이 있었다면 과연 그렇게 했겠느냐. 이는 지역주의를 초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과의 통합을 ‘지역주의 회귀’라고 비판해온 노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와 통합 문제에서 서로 엇갈린 시각을 보여왔다. ‘통합만이 살길’이라는 전직 대통령과 ‘통합은 지역주의 회귀’라는 현직 대통령의 상반된 인식이 맞서왔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지난 18~19일 광주 방문은 시사적이다. 노 대통령은 광주 무등산에서 “제가 속한 조직의 대세를 거역하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 발언을 “두 전·현직 대통령이 재집권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시작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통합 노선을 현실적으로 수용하면서 두 사람이 재집권을 위한 전략적 동맹관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배기선 의원 역시 “통합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일관된 메시지를 노 대통령이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전략적 제휴가 성립됐다”고 해석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대북정책, 노대통령보다 DJ가 더 큰 영향력” “대북정책에 관한 한 어떤 측면에선 노무현 대통령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향력이 더 강하다고 할 수도 있다.” 현 정부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 관계자로 일했던 한 인사는 대북·외교안보 분야에서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이렇게 비유했다. 김 전 대통령의 ‘힘’은 지난해 10월9일 북한 핵실험 강행 직후 극명하게 입증됐다. 북핵 실험 직후 안팎의 여론이 악화하고 정부의 정책 기조도 흔들리자, 김 전 대통령은 공개 강연과 외신 인터뷰·기고 등을 통해 ‘대북 포용정책 구하기’에 나섰다. 그는 북핵 실험 이틀 뒤인 지난해 10월11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선 “대북 포용정책이 왜 죄인가”라며 “햇볕정책 실패론은 타당하지 않고 대북 포용정책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북핵 실험 직후 김 전 대통령의 정면 돌파는 흔들리던 여론을 다잡는데 큰 힘이 됐다”며 “대북 포용정책의 구심이자 상징으로서 김 전 대통령의 입지와 영향력이 거듭 확인됐다”고 평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정동영, 손학규 등 유력 대선 주자들이 줄줄이 김 전 대통령과 만나는 것도 포용정책의 상징으로서 그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대선 주자들과 만날 때 “김 전 대통령 발언의 70~80%는 남북 관계와 외교안보 분야에 집중된다”고 최경환 비서관은 전했다. 김연철 고려대 연구교수는 “하반기에도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가능성이 낮으면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카드가 다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한나라 “부적절한 발언 말라” 불개입 촉구 한나라당은 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한데 대해 “국민 염원을 무시하는 훈수정치”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이 혼자 주먹을 휘두른다고 했는데,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뒷골목 주먹질에 비유하는 것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범여권 통합을 위한 그의 본격적인 행보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범여권 통합은 한나라당에게 불리한 구도가 될 수 있으므로, 앞으로 김 전 대통령의 움직임을 긴장하고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 당의 기류다. 나 대변인은 “대권 고지를 두고 경쟁하는 정치인들이 원로의 훈수 한 마디에 욕망을 접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정치 9단의 자격이 없다”며 “아무리 훈수를 둬봐야 모래알처럼 흩어진 범여권 주자들이 쉽게 뭉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답답한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무능한 좌파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 여론”이라며 범여권 주자들의 다툼에 김 전 대통령이 개입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한나라는 상대없이 혼자 주먹 휘둘러”
높아가는 대선 수위 대선 판도 변수로 오랫동안 우리 정치에선 금기시해 왔던 개념이다. 대부분 재임 기간 중 이미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기에, 현실적으로 과거의 대통령들이 퇴임 이후 정치에 개입할 여지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올해 대선은 이례적이다. 선거의 해인데도 현직 대통령은 정치적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요즘 부쩍 정치적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디제이(DJ)의 동교동 자택은 이른바 범여권 대선 주자들로 문전성시다. 정계개편 방향을 놓고 전·현직 대통령이 때론 대립하고 때론 손을 잡는 양상까지 나타난다. 정치판을 떠났지만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갖고 발언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훈수 정치’를 들여다본다. ‘DJ의 힘’ 대선 변수로 “(범여권) 통합 문제가 지지부진해 답답하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은 이미 지방을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쪽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만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면 누군가 한 사람이 나타나 정국을 리드하거나, 사생결단을 해서라도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단일 정당을 구성해야 한다. 안되면 연합체라도 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행동해야 한다.” 이른바 ‘범여권’의 핵심 정치인 발언처럼 느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나서 한 얘기다. 김 전 대통령은 “은퇴한 대통령으로서 말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좋지 않지만 …”이란 전제를 달면서도, 최근 정국 특히 범여권 상황에 대해 직설적으로 속마음을 토해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범여권 통합과 대선 승리에의 의지가 확연히 읽혀진다. 정치적 파장은 격렬하다. 한나라당은 당장 강하게 반발했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개입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요즘 정치권에선 ‘동교동’이란 단어가 다시 자주 등장한다.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은 범여권 대선 주자들로 문전성시다. 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수요’와, 이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동교동의 ‘공급’이 맞아 떨어지면서, 김 전 대통령은 정치권의 또다른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잦아지는 대선 주자들의 발길=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독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김혁규 의원,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잇달아 만났다. 28일엔 김한길 중도개혁 통합신당 대표를 만난다. 김근태·한명숙·이해찬 의원과 박상천 민주당 대표의 면담 요청도 접수돼 있다. 다음달 14일 열리는 6·15 남북 정상회담 7돌 기념행사엔 각 당 대표와 대선 주자들을 대거 초청했다. 현실 정치에 대한 그의 발언 수위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에겐 “(한나라당의 독주는) 쏠림 현상도 아니다. 상대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라며 “잘못하다간 (국민이) 체념하고 외면할 우려가 있다. 그러면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고까지 말했다. 정치권에선 5월 말을 기점으로 김 전 대통령이 대선과 관련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동교동계 출신의 전직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최근 국내정치 문제에 대한 보고를 굉장히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창구는 박지원 비서실장이다. 박 실장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 쪽 사람들까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최재천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때가 됐다는 판단에 따라 공개 발언을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훈수 정치’ 비판=전직 대통령의 현실정치 개입은 위험을 수반한다. 여론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 특정 대선 주자에 기운 듯한 기색이 나타나면 경쟁 주자들의 격한 반발을 부르며 체면을 구기게 된다. 최근 ‘디제이-손학규 연대설’이 흘러나오자 동교동 쪽이 이를 강력히 부인한 건 이런 점을 우려한 때문이다. 동교동계 출신의 설훈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누구 쪽으로 기울었다는 얘기는 순전히 낭설”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잇단 정치적 발언에 대해, 동교동 쪽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이라는 맥락에서 봐달라고 요청한다. “내가 한반도 평화·번영정책의 씨앗을 뿌렸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가꾸고 있다. 한번 더 좋은 대통령을 만들어서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동교동 비서 출신인 배기선 의원이 김 전 대통령한테서 직접 들었다며 전한 얘기다. 설훈 전 의원도 “김 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기조를 이어갈 세력과 인물의 집권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과 전략적 제휴인가?=김 전 대통령은 지역문제에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정동영 전 의장에게 “전라도 사람들은 나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줬는데, 지역감정이 있었다면 과연 그렇게 했겠느냐. 이는 지역주의를 초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과의 통합을 ‘지역주의 회귀’라고 비판해온 노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와 통합 문제에서 서로 엇갈린 시각을 보여왔다. ‘통합만이 살길’이라는 전직 대통령과 ‘통합은 지역주의 회귀’라는 현직 대통령의 상반된 인식이 맞서왔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지난 18~19일 광주 방문은 시사적이다. 노 대통령은 광주 무등산에서 “제가 속한 조직의 대세를 거역하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 발언을 “두 전·현직 대통령이 재집권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시작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통합 노선을 현실적으로 수용하면서 두 사람이 재집권을 위한 전략적 동맹관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배기선 의원 역시 “통합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일관된 메시지를 노 대통령이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전략적 제휴가 성립됐다”고 해석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김 전 대통령의 국내정치 관련 발언
“대북정책, 노대통령보다 DJ가 더 큰 영향력” “대북정책에 관한 한 어떤 측면에선 노무현 대통령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향력이 더 강하다고 할 수도 있다.” 현 정부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 관계자로 일했던 한 인사는 대북·외교안보 분야에서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이렇게 비유했다. 김 전 대통령의 ‘힘’은 지난해 10월9일 북한 핵실험 강행 직후 극명하게 입증됐다. 북핵 실험 직후 안팎의 여론이 악화하고 정부의 정책 기조도 흔들리자, 김 전 대통령은 공개 강연과 외신 인터뷰·기고 등을 통해 ‘대북 포용정책 구하기’에 나섰다. 그는 북핵 실험 이틀 뒤인 지난해 10월11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선 “대북 포용정책이 왜 죄인가”라며 “햇볕정책 실패론은 타당하지 않고 대북 포용정책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북핵 실험 직후 김 전 대통령의 정면 돌파는 흔들리던 여론을 다잡는데 큰 힘이 됐다”며 “대북 포용정책의 구심이자 상징으로서 김 전 대통령의 입지와 영향력이 거듭 확인됐다”고 평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정동영, 손학규 등 유력 대선 주자들이 줄줄이 김 전 대통령과 만나는 것도 포용정책의 상징으로서 그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대선 주자들과 만날 때 “김 전 대통령 발언의 70~80%는 남북 관계와 외교안보 분야에 집중된다”고 최경환 비서관은 전했다. 김연철 고려대 연구교수는 “하반기에도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가능성이 낮으면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카드가 다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한나라 “부적절한 발언 말라” 불개입 촉구 한나라당은 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한데 대해 “국민 염원을 무시하는 훈수정치”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이 혼자 주먹을 휘두른다고 했는데,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뒷골목 주먹질에 비유하는 것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범여권 통합을 위한 그의 본격적인 행보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범여권 통합은 한나라당에게 불리한 구도가 될 수 있으므로, 앞으로 김 전 대통령의 움직임을 긴장하고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 당의 기류다. 나 대변인은 “대권 고지를 두고 경쟁하는 정치인들이 원로의 훈수 한 마디에 욕망을 접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정치 9단의 자격이 없다”며 “아무리 훈수를 둬봐야 모래알처럼 흩어진 범여권 주자들이 쉽게 뭉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답답한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무능한 좌파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 여론”이라며 범여권 주자들의 다툼에 김 전 대통령이 개입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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