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12일 조선일보 2면 ‘국순당’광고
대선을 일주일 앞둔 12일 이회창 무소속 후보 선거사무소는 발칵 뒤집혔다. “벌써부터 기업이 유력 후보에 줄서고 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원인이 된 것은 이날 <조선일보>에 실린 주류회사 국순당의 술 광고였다. 이 광고는 “열 둘보다 나은 둘도 있소”라는 큰 제목아래 “뽑아 달라는 사람은 많은 데 뽑고 싶은 사람이 없고. 고만고만한 열 둘 보다, 둘이라도 서로가 전혀 다른 맛과 개성을 지닌 국순당 후보들은 어떻소? **주는 부드러워서 좋고, **주 담은 담백해서 좋으니 좋은 술의 선택은 더 쉬울 것이오”라는 카피를 배치했다. 상단엔 12자루의 연필에 1번부터 12번까지 기호를 표시한 사진을 실었다. 이 광고는 전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도 실렸다.
이회창 후보 쪽은 이 광고가 “명백한 이명박 후보를 지원하려는 의도를 가진 정치성 광고”라고 규정했다. 강삼재 전략기획 팀장은 “광고 속 연필 사진은 17대 대통령 선거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12명의 후보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명백히 대통령 후보를 상징하고 있고, ‘열 둘보다 나은 둘도 있소’라는 제목은 기호 12번 후보인 이회창 후보보다 기호 2번 이명박 후보가 좋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광고에 술 2병을 내세워 기호 2번을 상징화한 다음 ‘좋은 술의 선택은 더 쉬울 것이오’라고 해 기호 2번을 선택하도록 암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 쪽은 또 “국순당이 투표일을 불과 1주일을 남겨두고 보수 성향의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만 이런 광고를 실은 것은 명백히 이명박 후보를 위한 불법 선거 광고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 쪽은 “국순당의 배중호 대표가 2000년 ‘자랑스런 고대인상’을 받았다”며 이명박 후보와의 학연을 부각하기도 했다.
국순당 쪽은 정치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손사래쳤다. 국순당 홍보실 관계자는 “국순당은 종종 사회 이슈성 광고를 해왔고 이번에는 대선을 빗대 광고를 한 것”이라며 “전혀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회창 후보 쪽의 항의를 받고 ‘그렇게도 해석될 수 있구나’라며 솔직히 우리끼리도 놀랐다. 우리가 특정후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려 했다면 연필광고 사진 가운데 기호 2번을 단 연필을 훌쩍 높이 솟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중앙선관위는 국순당에 해당 광고 중단 명령을 내렸다.
안효수 선관위 공보과장은 “특정 후보의 기호를 연상케 하는 ‘둘’이나 ‘열둘’ 같은 말이 들어 있어 선거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선거 때 종종 상품을 선전하기 위한 광고가 있었지만 이 광고는 단순한 광고 목적을 넘어 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광고가 선거법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지만 선거법 94조(방송 신문 등에 의한 광고의 금지)에 따라 최대 3년 이하 징역이나 6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광고 중단 명령에 대해 국순당 홍보실 쪽은 “애초 이 광고를 <조선> <중앙> <동아> 3개 신문에만 집행하려 했고 오늘까지 집행을 다했다”며 “마침 광고를 다 끝내고 중단 명령이 내려져 다행이다. 오히려 운이 좋은 케이스 같다”는 반응을 나타냈다.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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